구원파, 명분 챙기고 스스로 금수원 개방… 기자들 출입은 제한
검사·수사관 등 70여명 건물 40여동 일제 수색 인근 신도 집 주변도 탐문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근거지인 경기 안성시 보개면 상삼리 금수원 일대는 21일 새벽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오전 4시쯤부터 속속 모여든 신도들은 정문 안쪽에 자리를 잡고 “유혈사태 각오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검찰 진입에 대비했다.
오전 8시쯤 경찰기동대 1,000여명이 진압 장비를 갖추고 금수원 부근에 속속 집결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도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팽팽한 긴장감은 오전 11시 “검찰에게 문을 열겠다”는 구원파 측 기자회견으로 해소됐다.
자신을 교단의 임시 대변인이라고 밝힌 이태종씨는 “지난 23년 동안 오명을 쓰고 살아온 우리는 오늘 ‘유병언 전 회장과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오대양 사건과 무관하다’고 검찰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았다”며 “유 전 회장의 인간방패라고 오해 받던 투쟁을 물릴 테니 누가 봐도 공정한 수사를 약속해달라”고 검찰에 촉구했다.
기자회견 뒤 신도들은 지난 15일 오후 정문에 내건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 현수막 바로 위에 영화 ‘친구’ 속 대사인 ‘우리가 남이가!’란 글귀를 적은 흰색 현수막을 새로 걸었다.
낮 12시 10분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약 한 달 간 굳게 닫혔던 금수원 철문이 열렸다. 유씨 일가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 검사와 수사관 약 70명은 승용차(1대)와 승합차(4대), 미니버스, 호송용 45인승 버스를 끌고 정문을 통해 금수원으로 들어갔다. 진입로를 막고 있던 신도 수백 명은 길 양쪽으로 비켜 서 검찰만 통과시킨 뒤 기자들의 출입은 제한했다. 경찰은 금수원 정문 앞과 울타리 주변을 에워싸고 출입을 통제했다.
검찰은 안성시청 등에서 확보한 금수원 내 건물 현황과 지도 등을 활용해 사전에 파악한 동선을 따라 23만여㎡에 자리 잡은 건물 40여 동을 일제히 수색했다. 일부 신도들은 수사관들을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수색의 최우선 목표는 각각 구인영장과 체포영장이 발부된 유씨와 장남 대균(44)씨 신병 확보였지만 검찰은 이들이 금수원에 없는 것을 사전에 예견한 듯 은신처 파악에 단서가 되거나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물 확보도 병행했다. 이와 별도로 경찰은 금수원 인근 핵심 신도들의 집 주변에 형사들을 풀어 탐문 수사를 벌였다. 금수원 수색은 오후 8시 5분쯤 끝났지만 검찰은 유씨와 대균씨 체포에 실패했다.
금수원 사수를 위해 ‘순교’도 각오했다던 구원파가 이날 검찰에 스스로 문을 연 것은 부정적인 여론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종교 탄압을 내세워 버티더라도 공권력 투입을 피할 수 없는데다 유혈 충돌이 빚어질 경우 분노한 국민에게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완전히 낙인 찍힐 게 뻔한 상황이었다. 금수원 개방은 물러날 곳 없는 구원파의 선택이었지만 자신들이 오대양 사건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전 국민에게 알리는 효과를 얻었다. 공권력 투입도 피해가 결과적으로 명분은 챙기되 책임은 회피하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구원파가 받았다는 검찰의 공식 통보 형태와 정확한 내용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도 대다수를 이해시킬 만한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구원파는 지난 16일 오대양 사건과 자신들의 관련성을 보도한 21개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태종 대변인은 검찰로부터 확인 통보를 받았다고 밝힌 뒤 “모든 기사를 삭제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엄정하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안성=남태웅기자 huntingman@hk.co.kr
안성=인현우기자 inhy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