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 11개국 정상들 앞에서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들이 지켜야 한다”며 역내 새로운 안보협력기구 창설을 주창(본보 20일자 16면)하고 나섰다. 시 주석의 제안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중국 봉쇄에 나선 미국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는 일본의 안보동맹 강화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21일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에서 “CICA를 아시아를 아우르는 안전 대화 협력의 플랫폼으로 삼아 지역 안전 협력의 새로운 틀을 세울 것을 건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CICA 사무국 기능을 강화하고 국방관련 협의 조직도 만들어 반(反)테러와 경제, 무역, 발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동등한 협력 원칙과 개방성을 가진 안보기구가 필요하다”며 이 제안에 호응했다. 2016년까지 CICA 의장국을 맡는 중국의 제안을 러시아가 즉각 지지함에 따라 CICA는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아시아 지역 새 안보협력기구로 확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1992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제의로 출범한 CICA는 중국과 러시아 등 26개 회원국 지역협의체다. 한국은 2006년 정회원국이 됐다. 미국 일본은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지만 이번 회의엔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시 주석은 “아시아의 일과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하며 아시아의 안보 역시 아시아인들이 수호해야 한다”며 “능력과 지혜가 있는 아시아인들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스스로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위 자신의 ‘절대안전’을 도모하겠다고 다른 나라의 안전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몸은 이미 21세기에 진입했는데도 머리는 여전히 냉전적 사고와 제로섬 게임의 구시대에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이번 구상에서‘미국’ ‘일본’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았지만 두 나라를 중심으로 한국 필리핀까지 동참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최근 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추진이라고 비판한 점을 감안하면 이에 대항하는 안보협력체를 만들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CICA가 중국의 제안처럼 모양새를 갖춘 지역안보협의체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인도 파키스탄 등 서남아를 비롯해 멀리 이집트 이스라엘까지 아우르는 CICA는 안보에 대한 이해관계가 회원국 마다 제각각인데다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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