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 교류엔 한계” 회의적 시각도 존재
천주교 서울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21일 개성공단 방문은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긍정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둘러싸고 남북이 첨예하게 맞서 있지만, 정치적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종교 지도자의 방북은 대치 국면을 완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도 “세월호 참사 수습에 정부 역량이 총동원돼 남북관계가 국정 우선순위에서 다소 밀려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염 추기경 방북을 계기로 남북대화 재개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고위급 접촉, 이산가족 상봉을 연달아 성사시키며 개선 기류가 점쳐졌던 남북관계는 3월 이후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북한이 ‘흡수통일론’으로 규정한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으로 다시 원점 회귀한 양상이다. 급기야 북한은 지난달부터 지속적으로 4차 핵실험의 운을 띄우며 한반도 정세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북한이 염 추기경 방북을 승인한 배경에는 관계 개선 의중이 일정 부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염 추기경이 명망 있는 종교 지도자란 점에서 북한이 ‘종교의 자유’를 매개로 국제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일 가능성이 크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정치범 수용소와 더불어 북한의 종교 박해를 대표적 인권 침해 사례로 적시한 바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염 추기경의 방북 이벤트를 통해 유엔 지적과 달리 북한 내부에도 ‘종교 자유가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이후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이 더욱 심화한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종교 행사는 북한 체제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호재로도 작용할 수 있다. 나아가 올 8월 예정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염두에 둔 장기 포석이란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정부와 천주교 측은 정치적 해석을 극구 경계하고 있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 겨울 성사되지 않았던 방북을 이어가는 차원이며 개성공단 주재원에 대한 격려ㆍ위로 이상의 목적은 없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교구 측도 “염 추기경의 개성공단 방문은 교황의 방북 가능성을 고려한 사전답사 성격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취임 뒤 한반도 평화와 이산가족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해 왔고, 박 대통령도 3월 염 추기경과 만난 자리에서 교황 방한에 전폭적 지원 의사를 밝힌 바 있어 교황의 한국 방문을 전후로 경색된 남북관계에 중대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다만 민간 교류의 한계 탓에 남북관계 흐름을 일거에 선순환으로 되돌리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통일부 관계자는 “종교 지도자의 방북은 평화ㆍ화해 같은 보편적 인류애 관점의 메시지에 국한돼 있어 남북간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나 비방ㆍ중상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안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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