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부터 할머니까지 '무한도전' 정치풍자쇼에 '흥미'
'물회' 다시보기 열풍…"웃지 않고는 못 배겨"
"무한도전 선거 투표율이 6·4지방선거 투표율보다 높을 겁니다."
50대 시청자 김선미(50) 씨는 MBC TV '무한도전'이 진행 중인 '차세대 리더 선거'에 쏠린 대중의 관심이 엄청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김씨는 "요즘 누가 정치에 관심이 있나요? 6·4지방선거에 누가 출마하는지는 몰라도 무한도전 선거에서 누굴 뽑을지에 대해서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합니다"라고 부연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정부에 대한 실망,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요즘 한편의 TV 예능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정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시청자들은 배를 잡고 웃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선거'에 관심을 갖게 된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결집하며 나아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결국 '투표'라는 점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실제 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투표'가 최고의 무기임을 알려
'무한도전'이 예전만 같지 못한 시청률에 대한 위기감과 6·4지방선거를 겨냥해 기획한 '무한도전 차세대 리더 선거'가 유치원생부터 할머니까지 시선을 끌어모으며 최고의 화제에 올랐다.
실제 선거가 치러지는 방식과 똑같이 진행되는 이 선거에서는 '무한도전'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리더를 뽑는다. 지금까지는 유재석이 이 프로그램을 리드해왔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서는 그 리더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처음에는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등 '무한도전'의 멤버 6명 전원이 출마했지만, 실제 정치판에서 흔히 보듯 여기에서도 정치적 계산하에 합종연횡이 펼쳐진 끝에 단일화가 이뤄지면서 최종 후보는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등 셋으로 좁혀졌다.
이 과정에서 각 후보는 각자의 공약을 내걸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세를 펼쳤으며, 심지어 토론회도 열렸다.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사전투표제가 실시되는데, '무한도전 차세대 리더 선거' 역시 지난 17~18일 전국 10개 도시 11개 투표소(서울 2곳)에서 사전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시간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실제 선거와 같이 진행됐다.
웃자고 시작한 예능프로그램의 투표에 참여한 시청자는 무려 8만3천여 명. 다양한 연령층이 투표소를 다녀갔고, 외국인도 있었다. 현실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도 투표 후 인증샷을 올렸을 정도.
본 투표는 오는 22일 실시된다. 오프라인 투표는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로비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1층 시민쉼터 2곳에서 진행되며 이날 온라인 투표가 동시에 실시된다. 이날 투표 결과는 사전 투표 결과와 합산된다.
20대 시청자 양휘승(21) 씨는 "나도 시간이 되면 22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찾아 투표를 할 것이다. 친구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라며 "투표를 해야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뽑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예능프로그램도 미래를 절박하게 고민하는데…"
'무한도전 차세대 리더 선거'는 지난 17일 후보 토론회를 마련했다. 실제 시사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 낯이 익은 정관용 씨를 사회자로 내세워 '형식'을 제대로 살렸다.
후보자들은 웃기자고 덤볐지만 사회자만큼은 정색을 하고 토론회를 이끌어가려 해 웃음과 정치풍자가 공존하는 시간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의미있는 대화 한 대목.
정관용은 진지한 표정으로 "리더로 당선되신 분은 향후 10년 동안 '무한도전' 아이템 선정과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고 설명하더니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무게가 실리게 되는 권한이라고 했는데 이런 선거를 꼭 해야하냐"라고 후보자들에게 물었다. '기껏해야' 예능프로그램 회의에 참여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의미.
그러나 후보자들은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다"라고 이구동성 답했다.
실제로 프로그램 리더를 뽑는 것은 연예인들에게 한단계 도약의 의미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고, '무한도전'이 이러한 아이템을 기획한 것은 현실 풍자 측면도 있지만 프로그램의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 화제성 못지않게 시청률에서도 고공행진을 펼쳤던 '무한도전'은 언젠가부터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듣기 시작했다.
유재석도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우리가 시청률 꼴찌를 여러 번 했다. 그래서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라고 자인했다.
그런데 더 의미가 있는 것은 그 다음 이어진 말.
유재석은 "물론 시청률이 떨어지면 위기다. 그런데 진짜 위기는 우리가 위기인지 모르는 것이다. 또한 위기인 것을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진짜 위기다"라면서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시청률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목표는 웃음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절박함에서 시작한 것인 이번 '차세대 리더 선거'인 것. 예능프로그램도 이처럼 미래를 절박하게 고민하는데 하물며 실제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물회' 웃지 않고는 못 배겨…날카로운 정치풍자 속 '웃음'도 회복
'무한도전'은 이번 선거 특집을 통해 '웃음'도 회복했다. 특히 지난 10일 방송된 김영철과 유재석의 '물회' 편은 다시보기 열풍이 이어지는 등 '대박'을 터뜨렸다. 한마디로 '웃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김희애-유아인 주연 드라마 '밀회'를 패러디한 '물회' 편에서 유재석은 김희애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한 김영철을 코미디 스승으로 사사하면서 '개인기 레슨'을 받았다. 이 내용은 보는 내내 배꼽을 빠지게 했는데, 그 와중에 현재 최고의 MC인 유재석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난 3일 시작한 '무한도전 차세대 리더투표'는 이처럼 정치풍자쇼를 펼치면서 웃음과 시청률도 회복했다. 매회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 등 인터넷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시청률도 경쟁프로그램인 SBS '스타킹'을 앞서고 있다. KBS가 세월호 참사 이후 예능프로그램을 결방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해도 '무한도전'의 이번 특집에 쏠린 관심은 강렬하다.
후보들은 유세과정에서 말과 행동으로 정치풍자를 날카롭게 하고 있다.
박명수가 애초부터 당선은 별무관심인채 "난 ○○○를 떨어뜨리려 나왔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특정후보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는 모습, 정형돈이 아이돌가수들을 동원하고 속옷차림으로 유세하는 등 '보여주기'에 비중을 두는 모습, 노홍철이 "시청자는 부모님"이라며 "부모님이 원하는 것들을 보여줘야한다"며 자극적인 공약을 내세우는 모습 등은 현실 정치와 오버랩된다. 또 선거가 진행되면서 공약 대신 인물만 남게 된 것이나, 본질은 흐려지고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모습도 익숙한 광경.
이처럼 '무한도전'은 차세대 리더선거를 전개하면서 날카로운 정치풍자 속 '웃음'도 회복하며 프로그램의 미래를 시청자와 함께 모색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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