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경제'만을 위한 근대화가 부른 비극... 국가-재벌 동맹을 해체하라

입력
2014.05.19 21:40
0 0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19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 등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TV로 시청하고 있다. 진도=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19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 등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TV로 시청하고 있다. 진도=연합뉴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훌쩍 한 달이 지났다. 모든 국민이 슬픔과 분노 그리고 죄책감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더구나 5ㆍ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돌아왔기 때문에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감정에 휩싸였다.

이번 참사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건이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위시한 행정부, 관료집단, 의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군대, 경찰(해경)과 구조기관, 기업, 방송과 언론, 종교……이 가운데 무엇 하나 온전히 돌아가는 것이 없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감당키 어려운 고통을 당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무참하게 할퀴고 찢는 시민들의 도덕적 수준도 우리를 좌절하고 절망케 한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집안 꼴이다. 그나마 살신성인한 사무직 승무원들, 만사 제쳐 두고 사고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희생자 가족들을 돌보는 자원 봉사자들, 그리고 어떠한 불이익이나 탄압도 감수할 각오로 저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와 정부에 용감하게 저항하는 시민들이 이 ‘콩가루’ 같은 집안을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민낯은 단순히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주의, 관피아, 선원들의 부도덕성과 무책임성, 자본의 탐욕, 신자유주의, 위험사회, 인간의 욕망이나 이기주의 등만 가지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말하자면 제대로 돌아가는 것 하나 없는 집안 대한민국은 우리가 추구한 근대화의 결과이며, 이 근대화의 결과가 비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세월호 참사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근대화는 그 영역에서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그 주체에서 국가와 재벌로 환원된 근대화, 즉 이중적 환원근대다. 달리 말하자면,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에 의한 경제성장이 한국사회가 추구한 근대화이다. 국가는 재벌에게 온갖 경제적 혜택과 특혜를 베풀었으며 재벌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해 국가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선사했다. 이처럼 국가와 재벌이 주연이 된 근대화 과정에서 다른 사회집단들과 개인들은 조연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개구리론’이다.

지난 3월 박 대통령은 기업에 대한 규제 개혁 철폐를 강변하면서 국가가 규제를 가하는 것은 국가가 그냥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것이고 그 돌에 맞은 개구리, 그러니까 기업은 목숨을 잃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기업, 특히 재벌에게 규제 철폐라는 혜택과 특혜를 베풂으로써 이른바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여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발언을 보고 세 번이나 놀랐다. 첫째, 다양한 사회집단과 개인으로 구성되는 국가 공동체가 대통령의 눈에는 그저 국가와 기업,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재벌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놀랐다. 그에게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은 인간의 존엄성, 개인의 자유, 국민의 생명과 재산 및 행복 추구권이 아니라 오로지 재벌의 이윤추구다. 둘째, 대통령으로서 아니 그 이전에 정치인으로서 심각한 인식 수준을 드러낸 이 개구리론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은 언론에 놀랐다. 셋째, 대통령이 이토록 저급한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청와대에는 참모진도 하나 없나 하고 놀랐다.

이처럼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에 기반하는 경제성장 위주의 환원근대는 유물주의적 가치관과 양적 세계관으로 표출된다. 유물주의적 가치관이란 물질적인 것, 즉 경제적인 것을 굳게 지키고 주장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양적 세계관은 돈과 화폐가치라는 양적 지표를 통해 이 유물주의적 가치관을 보다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나는 이 둘을 가리켜 환원근대의 언어라고 규정한다. 이 환원근대의 언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747’과 박근혜 정권의 ‘474’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이른바 ‘4만 달러 시대’를 가리키는 ‘4’라는 숫자다. 경제 이외에도 정치, 법, 과학, 예술, 종교, 교육, 가족, 에로스 등 다양한 삶의 영역이 4만 달러로 환원되고 이 다양한 삶의 영역을 구현하는 한 시대가 4만 달러 시대로 환원된다. 지식인들이나 언론이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을 설명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대는 신자유주의도 실상은 환원근대의 또 다른 언어일 뿐이다.

또한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에 의해 추동되는 환원근대는 경제성장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근대의 가장 중요한 지표인 분화와 개인화를 저해한다. 먼저 분화란 사회의 각 영역과 조직이 합리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경악한 것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을 위시한 수많은 국가기관이 동원되고 대양해군을 내세우는 해군과 해양주권을 외치는 해경의 최첨단 함정과 장비가 대규모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투입되었지만 정작 실종자 구조와 수색은 목숨을 건 잠수사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모두가 지위만 차지하고 있을 뿐 그에 상응하는 체계적 기능을 발전시키고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의 방증이다.

그리고 근대와 더불어 개인들이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존재가 되며, 사회와 국가는 이 개인들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수습 과정 전체를 관통한 것은 인간의 논리가 아니라 돈과 이윤 및 조직 그리고 장비의 논리다.

이런 식으로 분화와 개인화를 부정한 채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국가와 재벌로 환원된 근대는 지금까지 수많은 비극을 불러왔다. 예컨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 산업 재해로 인한 노동자들의 죽음(그 대표적인 것이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죽음이다), 고독한 노인들의 자살,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청소년들 심지어 초등학생들의 자살 등을 꼽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는 어쩌면 이러한 근대의 비극이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표출된 것인지도 모른다.

요즈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통령과 여당을 중심으로 ‘국가 개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이번 참사를 서둘러 봉합하고 그 책임을 다른 곳으로 전가하려는 시도에 불과해 보인다. 이번의 비극이, 아니 지금까지의 수많은 환원근대적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진정한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진지하고도 폭넓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 첫 번째 걸음은 환원근대의 핵심 축인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를 해체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국가와 재벌이 근대화의 ‘주연’이고 나머지는 ‘조연’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버리고, 모든 경제주체가 근대화의 주연이 되어야 한다.

그 두 번째 걸음은 경제적 근대화에서 사회적 근대화로 이행하는 데 있다. 근대화는 경제적 근대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보편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모든 부분체계가 자신의 고유한 논리와 규칙에 따라 주어진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예컨대 청와대 참모진이 그저 대통령이 하는 말을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개구리론’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세 번째 걸음은 사회 또는 국가의 개인들에서 개인들의 사회 또는 국가로 관점을 전환하는 데 있다. 사회는 그리고 사회의 한 유형인 국가는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개인들이 사회적 행위를 하기 위한 기회 또는 가망성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회나 가망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회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내내 빌리 브란트(1913~1992) 옛 서독 총리의 일화가 생각에서 떠나질 않았다. 브란트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유대인의 가해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총리로서 자신의 조국이 과거에 행한 반인륜적 만행에 대한 용서를 빈 것이다! 그는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수행해야 할 기능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독일연방공화국 헌법이 생각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 헌법은 헌법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제1조 제1항에서 국가가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 이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다.” 이렇게 하면 사회나 국가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에 빠지지 않고, 사회나 국가를 실체화하는 집단주의나 국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개인들과 그들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사회 또는 국가를 동시에 포착할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