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이후 절차·책임 입법 과정서 명문화 해야
특검도 실효성 거두려면 정관계 유착 고리 등 수사 범위 확실히 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 제정을 제안한다”고 밝혔지만, 유족 등이 요구해 온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정치적 수사(修辭)’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등이 요구해 온 세월호 특별법은 침몰 참사 책임자 중 하나인 정부에 진상 규명을 맡길 것이 아니라, 희생자 가족과 각계 민간 전문가 등을 포함한 독립된 진상규명위원회에 법적인 조사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 주도의 진상조사는 관련자 처벌과 조직 내 징계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특별법으로 진상규명위의 법적 안정성을 부여해 정ㆍ관ㆍ경(政官警) 유착 등 참사의 근본 원인을 폭넓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제안’이란 모호한 말만 했을 뿐, 특별법이 왜 만들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 소속의 박주민 변호사는 “(박 대통령이) 유족들과 면담할 때는 가족들 의견을 반영할 것처럼 얘기했지만 담화문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한 성역 없는 조사’, ‘사고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 등 유족들이 제시한 기준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특별법으로 국민참여형 진상위가 구성돼 폭넓은 조사권이 부여되더라도, 입법 과정에서 진상규명 이후 절차와 책임에 대해 명문화하지 않는다면 법 자체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과거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2006~2009년)나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2006~2010년)의 경우 관련 특별법에 화해ㆍ권고 등 사후 조항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위원회는 드러난 진실을 근거로 민ㆍ형사적 책임과 제도 개선을 도출해 냈다. 장진영 변호사는 “사건 진상조사에서 나아가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해결책을 구조적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며 “‘세월호 특별법’이 아닌 ‘대형 참사 진상규명 및 해결을 위한 특별법’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필요하다면”이란 단서를 달고 밝힌 특검 도입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서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노영희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는 “특검 문화는 검찰을 믿지 못해 발생한 것인데, 현재 검찰의 수사가 과잉일지는 몰라도 부실이나 불신을 받는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며 “특검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을 수렴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발언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평가했다.
세월호 특위에서 활동 중인 김용민 변호사는 “특검은 특별법에 의거해 진상조사가 끝나고 검찰 수사결과를 신뢰하지 못할 경우 가야 하는 순서”라며 “‘현 정부의 규제 완화로 사고가 났다’는 등 다양한 원인 규명이 가능한데, 특검을 통해 형사처벌 대상만 정하면 결국 책임 범위만 축소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검을 실시할 경우 수사 범위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참사 원인 제공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검찰 수사로 충분하기 때문에, 구조에 실패한 해경에 대한 집중 수사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정관계 로비 가능성 등 검찰이 다루기 어려운 내용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참사 책임자를 형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정ㆍ관ㆍ경 유착의 고리 등을 특검이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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