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참모진 배석 안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직접 국민에 머리 숙여 사과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내각 각료나 청와대 비서진 등 배석자 없이 연단에 오른 박 대통령은 24분에 걸쳐 시종 굳은 표정으로 담화문을 발표하다 연설 말미 의로운 희생자들을 거명할 때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쏟아냈다.
회색 정장 차림의 박 대통령은 오전 9시 정각에 시작된 담화문 모두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한 뒤 연단 오른 편으로 나와 머리를 숙였다.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였던 박 대통령은 공직 사회 개혁을 강조할 때는 단호한 목소리를 냈으나, 어린 동생을 구명조끼를 입혀 탈출시키고 실종된 고 권혁규군을 시작으로 희생자들을 호명하면서부터 눈물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목이 멘 목소리로 이들의 이름을 모두 부른 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면서 담화를 마친 박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문답 없이 퇴장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담화 발표장에는 지난해 3월 대국민담화나 올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발표 때와 달리, 국무위원이나 청와대 참모진은 전혀 배석하지 않았다. 경호실장과 대변인, 춘추관장, 제2부속비서관 등 실무 필수 직원만 기자석 뒷자리에서 담화 발표를 지켜봤다. 박 대통령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이고 후속 개각이 예고된 점을 고려해 아무도 배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비서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수석들도 모두 담화 발표장에 나오지 않아 참모진 개편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날 담화문 초안은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박 대통령이 전문가, 유족 등을 만나 의견을 들으면서 수정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 비서실장도 매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담화 내용을 점검했다. 담화 발표 장소는 청와대 본관뿐 아니라 팽목항, 안산 단원고 등 외부장소도 검토됐지만, 춘추관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날 박 대통령의 사과는 대국민 직접 사과로는 처음이지만, 세월호 참사 자체에 대한 사과는 네 번째다. 박 대통령은 사고 발생 13일 만인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처음 사과 입장을 표명했으나 ‘간접 사과’ ‘착석 사과’라는 비판을 받았다.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비판 여론이 커지자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종교지도자 간담회에서 별도의 대국민 사과를 예고했고, 4일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사고 발생부터 수습까지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자신의 책임을 처음 거론했다. 이어 6일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요식, 16일 유족들과의 면담에서 잇따라 사과 입장을 표명한 데 이어 이날 직접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됐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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