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에 갇힌 하늘, 줄이 끊긴 그네, 스타의 브로마이드처럼 친숙한 영정사진….’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포토갤러리 ‘아이들의 눈으로 본 평화,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전시 중인 작품들이다. 이 사진들은 지난해 팔레스타인의 요르단강 서안 도시 제닌에서 촬영됐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만져 본 현지 아이들이 직접 찍은 사진도 있고,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한 작가의 사진도 있다. 제닌은 테러와 보복 학살이 일상인 분쟁의 현장이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은 지난해 이곳에 평화구축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진을 치유의 한 수단으로 삼았다.
“여기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폭력에 노출돼요. 카메라를 주면서 ‘너희들이 사는 모습을 찍어보라’고 하니까, 자기네들끼리 편을 갈라 돌을 던지는 모습을 찍더라고요.”
월드비전의 ‘평화나눔 사진교실’에 멘토 격으로 참여한 사진작가 유별남(42)씨. 그는 2008년부터 이 기구와 함께 전 세계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이번 작업은 검문검색, 시민 봉기, 무단 공습 같은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라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이 세상의 아픈 모퉁이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을 다른 이와 공유하는 최초의 경험이기도 했다. 렌즈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자존감을 찾아갔다고, 그는 얘기했다.
“어떤 아이의 사진엔 항상 철조망이 등장해요. 그 아이에게 세상이란 언제나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는 공간인 거죠. 또 어떤 아이는 문밖 풍경을 찍기 두려워했어요. 물어보니 문밖에선 늘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풀어 놓은 개와 멧돼지에 쫓겨 다녔다고 하더군요.”
미술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유 작가의 전공이 사진인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대학을 졸업했다. 간판도 만들고 영화 소도구도 만들었지만, 즐거울 리 없었다. 2000년 ‘갔다 오면 뭐가 좀 변해 있겠지’ 싶어서 무작정 떠난 여행. 우연히 파키스탄이라는 나라의 매력에 빠져 반년을 그곳에 눌러앉아 지냈다. 거대하고 아름답고 또 거친 자연,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정치적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순수한 사람들. 그는 지니고 있던 카메라로 그것을 기록해갔다. 어느 순간 그는 ‘경계’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세상의 풍경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가가 돼 있었다.
“제닌의 사진교실에 참여한 아이 중에 이런 기억을 가진 아이도 있어요. 공습을 받아 집이 불타고 있는데, 그래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나가면 총에 맞아 죽을 게 뻔하고… 엄마 품에 안긴 채 오도 가도 못했던 그런 기억을요. 다큐멘터리 작가의 역할이란 그런 진실을 전달하는 거겠죠.”
작품만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해외에서 보낼 것 같지만, 유 작가는 사실 국내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 현재는 한국의 ‘경계’에 대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동, 서, 남해안과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 보여줄 계획이다. 그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면, 그는 다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지대로 떠난다고 말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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