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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코앞에 관객이… 클래식의 밀착 소통

입력
2014.05.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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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율하우스의 홀에서 최숙정씨가 18세기에 제작된 명기 그란치노와 대화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사진율하우스의 홀에서 최숙정씨가 18세기에 제작된 명기 그란치노와 대화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청중에게는 무대에 선 사람의 숨소리, 땀방울 하나까지 확인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그 같은 바램은 사실 스타들이 서는 대규모 공연장에서는 이뤄지기 힘들다. 그러나 일류 주자의 바로 턱밑에서, 그들의 연주를 문자 그대로 빨아 들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율 하우스콘서트(하콘). 클래식을 중심에 두고 장르 간의 소통을 꿈꾸며 오늘도 혁명을 꿈꾸는 곳이다.

“홀의 재질을 모두 나무로만 하다 보니 흡음 효과, 나무 특유의 따스한 울림의 효과는 우수하지만 나무 특유의 자연적 공명 현상만은 어쩔 수 없죠.” 녹음 작업을 총괄하는 매니저 장성학씨는 미묘한 차이를 나름의 테크닉으로 보정했다. “일반 녹음실의 경우 1.8 ~ 2.2초로 잡혀 있는 잔향감을 우리는 1.1 초로 잡았어요.”국내에서 녹음 스튜디오과 공연장을 겸하는 장소의 효시를 이루는 이 곳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기술적 조치다. 미국의 블랙버드, 아바타와 영국의 애비로드 B홀 등 최상급의 공간을 벤치마킹했다.

현대음악 앙상블 소리의 예술감독이자 탈리아ㆍ디 앙상블 등 두 실내악단의 첼로 주자. 또한 당당한 독주자로서 쉽사리 눈에 띄는 첼리스트 이숙정(46)씨지만 이 곳에서는 ‘그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방석에 털썩 주저앉은 관객 앞에서 요즘 제일 잘나가는 후배들과 어깨 나란히 연주하는 것을 스스로 즐기게 됐다. 여기서만은 스타 연(然)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난 2002년 하콘이 닻을 올린 이래, 저 자리에 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우선 침이 꿀떡 삼켜진다. 조성진(피아노), 권혁주(바이올린), 김예지(플루트) 등 최상급의 신예들이 줄줄이 뒤 잇는 무대다.

피아노 주자 박창수씨의 연희동 자택에서 출발한 하콘에 그는 2005년 참여, 자리를 옮긴 뒤에도 지금껏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방석을 깔고 도란도란 앉아 응시하는 관객들의 시선이 “엄청 부담”됐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관객들의 집중도는 물론 그들이 연주자와 공유하는 내면적 교감은 “더 엄청”났다는 것이다. “바로 코앞에서 너무 열심히 들으시는 거예요. 엑기스만 남는 거죠.”끝나고 거실에서 나누는 대화는 “너무 좋았어요.”라며 웃었다.“새로 옮긴 도곡동 스튜디오에는 2주 전 처음 왔어요. 모두 나무 재질에, 더욱 전문적 공간으로 거듭난 걸 보았죠.”

하콘 형식이 갖는 최대의 강점은 객석과의 밀착감이다. 연주자의 장단점을 몽땅 “까발기는” 하콘은 아무리 숙련된 주자라도 그 어떤 큰 무대보다 긴장되기 마련이다. 객석은 연주자의 땀(여기서는 상징적 차원만은 아니다)은 물론 아주 사소한 실수까지 바로 코앞에서 본다. 의자 없이 방석을 깔고 앉는 까닭에 악기로부터 발생하는 진동 자체를 느낄 정도다.

그는 “이렇듯 1급 주자들만 모아 하는 연속적으로 하는 콘서트는 없다”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대표 박창수의 힘이 가장 크다”고 공을 돌렸다. 국내의 대표적 즉흥 연주자로서 그 간 여러 독주자들과 쌓아 올린 견고한 인맥이 자원으로 확장된 힘이다. 그를 돕는 스탭들의 행정력ㆍ기획력이 없었다면 공허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최씨는 하콘의 요체를 수준과 분위기로 압축한다. 그는 “시간적ㆍ물질적 희생”이라며 하콘에 참여하는 주자들의 노력 혹은 자발적 희생을 알아주길 바라는 눈치다. 외형적으로 보자면 누구도 그에 대해 부인할 수 없다. “매우 예외적 문화 현상이죠.”저 말을 파고들면 한국의 문화판을 장악한 상업주의의 폐해가 절로 드러난다. 하콘에 관련된 사실(fact)들은 21세기 한국 문화판에 도배된 상업주의에 대한 정확한 반명제들이다.

그는 또 말했다. “계속 지속되기를 정말 강하게 기대해요. 클래식이란 게 일부만이 누려온 문화 행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하콘처럼 클래식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입증해 나가야죠.”현대음악 전문 앙상블 소리 활동은 저 같은 다짐이 실체적 진실이라는 사실을 족히 말해준다.“피아노나 바이올린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첼로의 현대 음악을 계속 발굴ㆍ발표할 거예요.”진보적 예술에의 애착이다. 하콘은 그 같은 믿음을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주는 견결한 우주 정류장인 셈이다.

첼로 주자는 자신의 연주에 대해 “바닥에서 진동을 느꼈다”는 감상평을 받을 때 최고의 찬사로 느낀다. 바닥과 첼로를 연결시켜 주는 엔드핀이란 물건은 실제로 물리적 진동을 전달하는 전도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련한 첼리스트 최숙정씨는 한국에서 그 같은 평을 끌어낼 공연장이 이 곳 말고는 웬만해선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

관습적 의미에서의 정규 공연장은 아니었던 만큼 1급 연주자들은 불편을 감내해야 함을 잘 안다. 그렇지만 멀리서만 봐 오던 그들의 진솔한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자신들의 턱밑에서 귀 밝고 눈 밝은 청중이 곰곰 지켜본다는 사실이 연주자들로 보자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바꿔 말하자. 저 같은 점은 곧 하콘이 자신의 연주에 자신 있는 연주자들만을 위한, 기술로도 능멸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그는 ‘하콘 = 고급 문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같은 차별적 용어 대신, 우리 시대 한국의 문화 지형도 속에서 하콘이 갖는 의미를 새기고자 했다. 그 별난 존재에 의해 자본의 오만이 마침내 스스로 무릎 꿇게 되는 날, 그의 첼로는 에디뜨 피아프의 샹송 ‘장미빛 인생(La Vie Roseㆍ331회 연주)’을 더욱 힘차게 노래할 것이다.

사족: 에움길이란 굽은 길 또는 에워서 돌아가는 길을 뜻한다. 이 말을 기자는 이기상 씨가 번역한 하이데거의 예술 철학서 ‘숲길(Holzwege)’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 말로 학문 하기를 주장해 온 이 교수에게 감사하며, 이 살가운 말을 우문에 연루시킨다. 가상이 실재를 제치고 안방마님 행세를 하는 이 시대, 사람 냄새 나는 꾀죄죄한 것들은 문득 우리의 덜미를 잡는다. 가끔, 그것들은 우리를 호출한다.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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