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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게 물어본 세월호 참사의 '비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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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게 물어본 세월호 참사의 '비상식'

입력
2014.05.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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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선체 진입 안한 해경- 타인 아픔 외면하고 양심 아닌 지시에 복종

승객 버리고 탈출한 선원- 동물에게 없는 인간만의 이타성 보이지 않아

세월호 구조 작업과 진상 규명 과정 중 드러난 비상식과 의문들에 대해 과학자들이 여러 분석을 내놓았다. 과학자들은 구조 당국의 대응에선 이익을 위한 맹목적 복종을 보여준 50여 년 전의 심리 실험을,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친 선원들에게선 본능에만 충실한 침팬지의 모습을, 무용지물 재난 시스템에 대해선 개미 사회에도 존재하는 집단지능의 부재를 각각 떠올렸다.
세월호 구조 작업과 진상 규명 과정 중 드러난 비상식과 의문들에 대해 과학자들이 여러 분석을 내놓았다. 과학자들은 구조 당국의 대응에선 이익을 위한 맹목적 복종을 보여준 50여 년 전의 심리 실험을,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친 선원들에게선 본능에만 충실한 침팬지의 모습을, 무용지물 재난 시스템에 대해선 개미 사회에도 존재하는 집단지능의 부재를 각각 떠올렸다.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의문이 해소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간다. 희생자 유족과 국민은 사고 과정을 되짚는 과정에서 잇따라 터져 나온 비상식을 보며 “도대체 왜?”라고 묻는데 돌아오는 대답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기다리다 못해 과학자들에게 물었다. 세월호 사고는 동물행동학, 뇌과학, 진화심리학, 사회심리학 등의 관점에서도 예견된 참사였다고 그들은 말한다.

왜 이틀 지나서야 선체에 진입했나

희생자 유족과 국민이 특히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수중 구조 작업이 너무 늦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해양경찰 구조팀은 배 안에 많은 승객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배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선체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본격적인 선체 진입은 사고 이틀 뒤에야 시작됐다. 잠수사가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선박의 투입도 보고 절차 때문에 늦을 수밖에 없었다고 구조당국은 해명했다. 들어가면 구할 수 있는데 왜 안 들어갔을까. 설사 대기하라는 지시가 있었어도, 행정 절차가 필요했어도 누군가 의로운 한 명쯤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징계를 각오하고 나서서 인명을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과학자들은 미국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실험’을 떠올렸다. 밀그램은 1961년 피험자들을 모집해 교사와 학생 역할로 나눈 다음 학생 역할의 피험자를 전기충격 장치가 연결된 의자에 묶었다. 교사 역할의 피험자가 문제를 내고 학생이 틀릴 때마다 교사가 의자에 점점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게 했다. 이 일을 마치면 교사는 대가(4달러)를 받는다. 사실 학생은 배우였고 전기충격 장치도 가짜였지만 교사는 이를 몰랐다. 당시 밀그램은 교사 역할의 피험자 중 대략 0.1%만이 지시받은 대로 끝까지 전기충격을 가할 것으로 짐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한참 빗나갔다. 자그마치 65%가 ‘임무’를 완수했다. 고작 4달러를 받기 위해 절반 이상의 피험자들이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고 부당한 지시에 복종한 것이다. 이후 이 실험은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지만 여러 심리학 실험에 응용되기도 했다.

한 뇌과학자는 “정신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도 위기 상황에서 윤리적 행동 대신 지휘 체계에 복종하는 행동을 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이라며 “구조당국의 초동 대응 과정에서도 이 실험처럼 복종 기제가 더 강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왜 선원들은 승객을 구하지 않았나

대부분의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도 먼저 도망친 세월호 선장과 일부 선원들의 행동을 보면서 한 진화심리학자는 “침팬지 세상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서 ‘본능’에만 충실했던 그들이 약 600만년 전 침팬지와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오기 전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사실 동물 세계에도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돕는 이타적 행동이 나타나지만 이는 오랫동안 연구대상이 돼왔을 만큼 특이한 경우다.

인간의 이타성은 상당 부분 무의식적으로 발휘된다고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나중에라도 보상을 기대하며 계산적으로 행하는 이타적 행동 말고 순수하게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은 희생자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뇌에서 극히 짧은 순간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선장이나 선원처럼 다수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순수한’ 이타성을 발휘하는 사회가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에서 드러났듯 모든 인간에게서 희생 정신이나 이타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금방이라도 배가 침몰할 듯한 상황에서 이타성을 발휘할 사람만 발탁해 선원으로 채용하면 좋겠지만, 그럴 방법이 없다.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과학자들은 강조한다. 안전을 책임진 이들에게 의무를 지우고 훈련시켜 전문성을 발휘하게끔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이 위기 상황에서 불확실한 이타성을 보완해 다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왜 재난 대응 시스템이 작동 못했나

재난 상황을 막거나 대처하는데 필요한 시스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선박 안전 점검 절차가 분명 존재했고 담당 부처와 직원들이 있었고 바닷속 수십m 아래로 내려갈 수 있게 훈련 받은 구조요원들이 있었다. 문제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이 같은 요소들이 모래알처럼 따로따로였다는 점이다.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전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텐데 말이다.

과학자들은 시스템을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하는 동물로 개미를 꼽는다. 수많은 개미가 모여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과학자들은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가령 개미 한 마리가 어떤 일을 맡아 하다 잘 안 되면 금세 다른 개미가 와서 보완한다. 또 자기보다 일을 더 잘 해내는 동료가 있으면 기꺼이 동료의 방법을 따른다. 딱히 눈에 띄는 지휘자가 없어 보이는데도 집단 전체가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과학자들은 개별 개미의 자율적인 협력 행동 덕분이라고 본다. 모래알처럼 각각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해 행동을 최적의 방향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동물행동학과 사회심리학에선 이를 집단지능(무리지능)이라고 부른다. 집단 구성원 하나하나는 그리 뛰어나지 못해도 여럿이 함께 합리적인 방향을 찾아가다 보면 훌륭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려면 구성원들이 개미 사회의 집단지능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과학은 가르쳐준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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