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공무원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 순환근무가 아닌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좋고 나쁜 일들에 대해 우리 각자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각자가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국민 모두의 윤리의식 향상이 필요하다.” 최근 미디어에 나온 정책전문가, 종교 지도자 등 잘 알려진 분들의 말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공감의 배경은 과연 무엇인가. 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 ‘불신’과 ‘피해의식’이 있다는 점이다. ‘하라는 대로 하면 손해 본다’는 식의 자조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책적인 면에서는 ‘다양성’과 ‘디테일’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다는 점이다. 다양성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양성과 불공정을 혼동하는 일부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디테일의 경우 필요한 곳에는 없고 불필요한 곳에는 지나치게 많다. 공무원 순환근무제가 한 예다. 공무원 순환근무제는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 원자력, 우주, 항공, 해양 등 특수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면 각 분야의 전문가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들 분야의 업무는 과학 기술 및 국제협력 부분에서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므로, 공무원 중에서도 전문가를 양성하여 맡기거나 외부 전문가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전에 몇 년간 모 부처 장관 자문 위원으로 봉사한 적이 있다. 자문 위원이라는 제도가 장관에게 전문가의 의견과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 좋은 제도인데, 장관과의 만남은 실제로 딱 한번 있었다. 바로 장관 이임 인사 때였다. 관료 제도의 다양성과 그 제도의 바른 시행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다. 한 예로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공무원을 업무의 영역과 전문성에 따라 GS, AD, EX, SL 등 150개가 넘는 다양한 연봉 시스템으로 분류하여 각각 성과관리를 해나가고 있다.
최근 ‘관피아’가 사회 이슈화되면서 관료체계의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에는 공무원이 퇴직 후 공공법인에 재취직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라는 의미로 ‘아마쿠다리(天下り)’라는 말이 있는데, 원래 뜻에 비추어 보면 ‘하늘에서 내려와 신의 직장으로 간다.’라는 말로 설명이 될 수 있다. 일본 정부 각 부처에는 이 일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로 공공연한 일이다. 반면, 미국 공무원제도는 일본이나 한국하고는 매우 많이 다르다. 미국 연방정부는 대부분의 경우 ‘usajobs.gov’라는 웹사이트를 통해서 전 부처의 일자리를 공모해 가장 적합한 전문가를 선발한다. 대신 일반 미국 연방 공무원은 정년이 없다. 각 나라마다 다른 모습이고 제도의 장단점이 있다. 제도의 단점이 있다면 제도의 전면 폐지보다는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관에서 오랜 실무 경험을 가진 인재들도 사회의 큰 자산이기에, 권력이나 이권으로서가 아닌 국가 자산으로서 잘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나 국민의식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문화에 현재의 경제적, 시대적 상황이 더해져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들어진다.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경제적 성공을 이뤘지만, 문화나 국민의식의 변화는 함께 압축성장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우리 사회의 문화나 국민의식의 변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반복되는 교육을 통해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빠른 변화는 관련 법·규정의 제·개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최근 시행한 실내 금연법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국회의 발 빠른 대처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아직도 긴급한 많은 법안들이 국회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앞으로 국회의 역할을 기대해보고 싶다. 법이야말로 최소한의 국가안전망을 지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디테일’을 고려한 법·규정의 제·개정과 올바른 집행이 국민의식의 변화로 이어져, 불신이 없어지고 다양성이 존중되며 ‘하라는 대로 하면 득이 되는 일이 더 많은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여준구 KIST 달탐사연구사업추진단장ㆍ전 한국항공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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