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참사가 터지면 가장 욕먹는 건 대통령이다. 대형 참사는 비판 세력이 몇 년 동안 이용할 정치적 기회를 제공했다. 불과 1년 전 대선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지만, 나는 그 자산 대부분을 잃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일부 여당 정치인까지 나를 반대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참사 후유증은 남은 임기 내내 국정을 가로 막았다.
물론 내 잘못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나는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더 절실히 사과해야 했다. 그러나 TV 뉴스는 과장이 심했고, 내 판단을 어렵게 했다.’
누구 생각일까.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퇴임 후 내놓은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Decision Points)’에서 2005년 가을 초대형 허리케인으로 뉴올리언스 주민 1,800여명이 죽고 주택 30만 채 파괴, 960억 달러(100조원) 피해를 낸 ‘카트리나’ 참사를 설명하며, 그렇게 적었다. 자신을 20세기 이후 최악의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대표적 국정 실패 사례인 카트리나 수습 과정에서 억울하게 비난 받았다는 뉘앙스가 뚜렷하다.
흐르는 세월이 부시 전 대통령의 진면목을 알아본 모양이다. 2009년 2월 역대 최저 지지율(22%) 속에 물러난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무기력한 모습과 맞물려 결단력, 신념, 책임감을 지닌 지도자로 각인되기 시작했고, “부시가 위기의 미국을 구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폐족’으로 몰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이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부활한 것과 흡사하다. 큰 참사가 벌어지면 감정에 휩싸인 여론 때문에 대통령이 욕을 먹지만, 시간이 흘러 감정요소가 배제되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로 위기를 맞은 박 대통령은 어떨까. 초보 항해사의 실수와 조타 미숙, 선장ㆍ승무원의 승객 유기 및 탈출이 직접적 원인이고 당국의 초동 대응 미숙이 겹친 게 이번 참사다. 언론과 정치권은 정부 시스템이 총체적 난맥에 빠진 것처럼 공격하지만, 찬찬히 따지면 과도한 측면이 다분하다.
박 대통령이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라면 이런 회고록을 쓸지 모른다.
‘MBN이라는 종합편성 방송은 전문 잠수사를 사칭한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 침몰 선체에 생존자가 있다는 오보를 내보냈다. 다른 언론도 검증되지 않은 구조 방법을 주장해 혼선을 초래했다. 뒤늦게 한국기자협회가 ‘세월호 참사보도 지침’을 마련했으나, 선정적ㆍ미확인 보도로 국민 감정은 이미 최악이었다.’
정치권에 대해서는 이런 글을 남길 수 있다.
‘참사가 터지자 국회는 묵혔던 해상 관련법을 통과시키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해피아’ 공무원 산하기관 취업 근절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정치인들이 부산ㆍ울산ㆍ인천항만공사에 억대 연봉을 받는 이사로 취업 중인 건 언급하지도 않았다.’
모든 걸 단번에 바꾸길 원하는 국민 정서는 박 대통령에게 이번 참사를 계기로 ‘100% 재해 근절’ 대책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런 대책은 가능하지도 않고, 성급한 대응은 후유증만 남길 뿐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사례가 대표적이다. NASA는 1998년 안전사고 근절 대책을 내놨으나 99년 ‘야드’를 ‘미터’로 잘못 환산한 프로그램 때문에 화성 탐사선이 폭발했고, 2003년에는 정비 불량으로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가 폭발했다. 재난을 100% 막는 제도는 없으며, 직업윤리로 무장한 각 구성원의 노력으로 사고 가능성을 최대한 낮출 수 있을 뿐이다.
짧은 생의 마지막 순간 한 학생이 ‘엄마 사랑해요’메시지를 보냈다. 온 국민이 눈물을 흘렸고 화가 났다. ‘국가개조’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격앙된 상태에서 요구한 결과물이 NASA의 실패처럼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도 사고를 막지 못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법과 제도를 뜯어 고치기 이전에 우리 가슴 속 해이한 직업윤리부터 다지는 게 세월호의 교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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