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8일 일기에 나는 이렇게 썼다. “나는 늦어서 쓸쓸하다. 세상에는 경청해야 할 말이 너무 많고, 존중해야 하는 표정이 너무 많고, 결정적으로 치명적인 모범들이 너무 많다. 치명적인 모범들. 항상 그것이 문제다. 씨X, 그것들이 날 피살하려고 한단 말이지.” 저 무렵 나는 어지간히 염세주의에 경도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그때보다 내 형편이 별반 나아졌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옳고 좋은 세상이 가능한가라고 자문할 때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 편이다. 희망을 가지는 것도 좋고 행복을 꿈꾸는 것도 좋다. 누구나 그럴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에겐 자신의 행복을 구현하기 위해 투쟁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억압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유일한 가치거나 목적이어야 한다는 집단 무의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세계는 소유를 통해 존재를 증명 받으려는 욕망과 남을 앞서려는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 파멸로 치닫고 있으며,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말을 음울한 목소리로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게 시인이어도 좋고 가수여도 좋다. 세상은 망하고 말 거야,라는 루머를 퍼뜨리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폐허의 바닥에 닿고 생의 은폐된 본질을 가까스로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폐허를 가리키며 폐허라고 말하는 자, 그의 무기력한 슬픈 눈 앞에서 우리는 좀더 진실하고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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