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속절없이 시를 썼다. 아들딸을 잃고 시를 썼고, 때로는 불행한 부모들을 대신해서도 시를 썼다.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애의 극한이 잊힐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유리창’을 썼고, 김광균은 ‘은수저’를 썼고, 김현승은 ‘눈물’을 썼다. 김종삼은 더 많은 시를 썼다. ‘음악’과 ‘배음’이, ‘무슨 요일일까’가 모두 죽은 아이를 위한 시이며, 두 편의 ‘아우스뷔츠’에도 그 중심에는 어린 생명의 죽음이 있다. 가장 처절한 시 ‘민간인’은 그의 사후 광릉 근처에 세운 그의 시비에 새겨졌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의 내용은 크게 어려울 것이 없지만, ‘민간인’이라는 제목이 오래도록 생각을 붙잡는다. 이 제목은 시가 전하려는 처절한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분위기를 포괄적으로 전하려는 것일까. ‘민간인’은 물론 군인이나 관리와 대비되는 신분의 사람들, 위험 앞에서 자신을 엄폐할 권력이 없고 자신을 지킬 무기가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만, 말의 의미가 거기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시는 비극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전한다. 이 점에서 이 시는 시인의 생애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 혹은 목도했던 어떤 사건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시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그가 황해도 은율 태생이라는 것에 덧붙여 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지식과 말년의 기이했다는 그 행적을 소상하게 전하는 사람들도 이 시와 관련된 정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사공이 조심조심 노를 젓던 배에는 누구누구가 타고 있었는지, 시인과 죽은 아이는 관계는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 아이는 어떻게 바다 속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도 정작 그 대답은 감춘다. 시는 자세하게 말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것이 차마 자세하게 말하지 못할 사정을 오히려 생략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정황의 생략 때문에 더욱 상세하게 부각되는 시간과 장소로 ‘민간인’이라는 제목이 설명되는 것은 아닐까.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에, 곧 ‘국민과 인민의 사이’에서 아이가 부모의 품을 잃었다고, 그 두 개의 ‘민’ 사이에 아이의 바다가 있다고.
그런데 이 설명이 완전히 옳을까. 마지막 시구를 읽는 일이 남아 있다. 다시 말해서 ‘스무 몇 해’의 세월과 ‘수심’을 재는 일 사이의 관계를 캐묻는 일이 남아 있다. 소박하다고 할 수 없는 그 질문에는 아마도 이런 대답이 가능하리라.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가도 부모의 수심(愁心)은 여전히 깊다고. 그래서 20여년이 지나도, 그 바다는 얼마나 깊을까, 그 바다는 얼마나 깊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이렇게 묻게 된다고. 절망의 무한함 속에 들어간 사람은 ‘민간’에 살면서도 민간에 살지 않는다. 부모들은 ‘가난만’ 남은 ‘두 겹으로 빈’ 자리에 산다. 민족의 유랑이 미처 끝나지 않았던 (지금이라고 해서 끝났는가?) 1940년대에 두 개의 권력 사이에서 아이를 울며 바다에 밀어 넣어야 했던 어른들의 비극이 형태를 달리해서 지금 남녘 바다에서 다시 되풀이 되었다. 그 바다는 한낮에도 얼마나 어두울까.
먼 나라 그리스의 시인 야니스 리초스도 딸을 잃고 시를 썼다. 딸이 바닷물 깊은 자리에서 숨을 거둔 것은 아니었으나, 부모에게 덜 처절한 자식의 죽음은 어느 땅에도 없다. 그는 침착하게 썼지만 길게 썼다. 그는 ‘부재의 형태’라는 제목으로 서른두 편의 연작시를 썼다. 다음은 서른 번째 시이다.
어린이 놀이터에, 작은 요람 하나 비어 있다.
루나 파크에, 목마 하나 기수 없이 서 있다.
나무 아래, 꿈에 잠겨, 그림자 하나 앉아 있다.
빛 속에, 실현되지 않는, 먼 침묵 하나.
그리고 언제나, 목소리들 웃음소리들 한가운데, 간격 하나.
연못 위에서, 오리들이 잠시 멈춘다,
아이들의 어깨 위를, 나무들 저 너머를 바라본다.
한 아이가 말없이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슬픈 발자국소리만 들린다. 아이는 오지 않는다.
말 하나가 메리고라운드에서 달아나,
눈을 비비고 줄지어 선 나무들 뒤로 사라진다.
아마도 숨어 있는 소녀 곁에 동무하려 가는가,
고적한 저녁 어둠 속에, 달의 세 번째
네거리에,
가로등도 꺼진 저 은빛 막다른 골목에
우리의 비통한 부모들에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시인에게도 이 세상에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다. 아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이가 없다. 그 자리를 채우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만들기도 했던 아이는 그 자리를 비워두고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시인에게 빈자리는 언제까지나 빈자리이며, 빈자리가 그 비어있음을 지킴으로써 ‘부재의 형태’가 된다. 아이가 앉았던 요람이 비어 있고 그가 탔거나 타야 할 목마에 기수가 없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와 웃음소리 속에는 그 아이의 것이 빠져 나간 빈 간격이 있다. 그림자이며 침묵인 그 아이는 말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는 그 부재로 이 세상과 관계한다. 떠난 아이는 요람과 목마 위에, 빛과 웃음소리들 속에, 이 모든 존재들 사이에 부재의 형태를, 또는 부재의 형식을 만들었다. 아이는 보이지 않으나 슬픈 발자국소리는 들린다. 그것은 아이의 짧은 생명이 이 세상에 남긴 작은 파장이며,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떠는 울림이다. 연못의 오리들은 이 파장이 자기들을 스쳐갈 때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그 정지의 시간은 아이가 거기 있다면 오리들을 바라볼 시간이다. 오리들은 자신들의 정지에 놀란 듯 다시 고개 들어 나무들 뒤를 바라본다. 살아 있는 것들 속에도 이렇게 부재가 동작의 한 형식으로 끼어든다. 말은 사라진 소녀를 찾아 “달의 세 번째 네거리에” “은빛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데, 이 말은 물론 말이 아니라 목마이며, 말의 형식으로만 남은 말이다. 소녀는 부재의 세계에 존재의 형식을 얻음으로써 이 존재의 세계에 부재의 형식으로 남는다. 풀어 말하자면, 영원한 비극이 되어 남는다.
슬픔은 잊혀도 이 슬픔의 형식은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문학이 늘 그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부적이다. 그러나 이 부재의 형식조차도 지금 우리에게는 사치가 아닌가. 형식을 말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비천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마주한 것은 죽음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들의 죄악이기 때문이다. 나태와 무책임에 형식이 없듯이 악의 심연에도 형식이 없다. 미뤄둔 숙제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쌓아준 죄악이 우리를 마비시켜, 우리는 제가 할 일을 내내 누군가 해 주기만 기다리며 살았다. 누군가 해 줄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다. 아니 기다리지도 않았다. 책 한 줄 읽지 않고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우리들은 ‘산다는 게 이렇게 사는 것이지’ 같은 말을 가장 지혜로운 말로 여기며 살았다. 죄악을 다른 죄악으로 덮으며 산 셈이다. 숨 쉴 때마다 들여다보는 핸드폰이 우리를 연결해 주지 않으며, 힐링이 우리의 골병까지 치료해 줄 수 없으며, 품팔이 인문학도 막장드라마도 우리의 죄를 씻어 주지 않는다.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진정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 모양으로 놓아 둘 수 없다는 말이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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