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강호동, 신동엽이 방송의 봄철 개편을 맞아 최근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유재석이 나오는 KBS ‘나는 남자다’는, 제목 그대로 남자만의 토크쇼를 표방한다. 방청객 250명도 남중, 남고, 공대 출신이어서 토크쇼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남자만의 거침없는 대화나, 남자 특유의 과한 군대 리액션이 역시 ‘유재석표’ 예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시청률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고작 4.1%. 유재석이 오랜만에 들고 온 파일럿 예능이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강호동은 MBC에서 ‘별바라기’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팬클럽과 스타가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하는 토크쇼인데, 일반인과 예능인의 접점을 모색하는 최근의 예능 트렌드와 맞아 떨어진다. 팬으로 출연한 일반인의 입담이 스타들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토크쇼를 압도했다. 강호동도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출연한 일반인이 더 주목 받도록 하려는 듯 조신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시청률은 4.2%에 머물렀다.
신동엽이 나오는 KBS의 파일럿 프로그램 ‘미스터 피터팬’도 다르지 않다. 중년 아저씨의 놀이 문화를 되찾는다는 참신한 콘셉트로, 야외 예능을 거의 하지 않는 신동엽이 야외로 나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만했다. 하지만 시청률은 역시 4.4%.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이 나오는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4%대의 시청률은 종편이나 케이블의 잘 나가는 프로그램 시청률과 비슷하다. 스타 진행자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인가.
일반인(이 출연하는) 예능이 연예인 예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몇몇 스타 진행자들이 주목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이들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듯, 유재석 강호동 모두 일반인들로부터 재미를 이끌어 내는 것이 향후 예능의 관건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남자 방청객 250명과 팬클럽이라는 존재는 그래서 이들 스타 진행자의 역할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어찌 보면 스타 진행자들이 일반인에 기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더 큰 변화는 예능 프로그램이 ‘소품종 대량’ 시청률을 겨냥하던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 시청률을 겨냥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대표적 예능 프로그램 한 둘이 20~3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예능 전체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져 적게는 5%, 많게는 10% 정도의 시청률을 나눠 갖는다. 예능은 다양해지고 시청률은 분산돼 낮아진 것이다. 그렇지만 더욱 분명하게 타겟을 설정한 예능 덕분에 마니아의 열광은 더 커졌다. 이것은 우리가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로 들어왔다는 걸 말한다.
이런 환경에서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린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의 역할과 위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스타 진행자에 대한 주목도가 일반인에 밀리고 있는 지금 이들은 과거 ‘오직 하나’의 위상에서 점점 ‘그들 중 하나’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신동엽의 다품종 다매체 전략(10개에 육박하는 지상파 방송과 종편을 넘나드는 진행)은 유재석, 강호동의 소품종 전략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보인다. 이들이 달라진 예능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어쨌든 스타 진행자의 시대가 조금씩 저물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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