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산’으로 친숙한 조선 정조 이야기. 지난 주말 누적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배우 현빈(32)이 처음 도전하는 사극이자 군 제대 이후 그의 첫 작품. 정조 암살을 시도했던 ‘정유역변’을 모티프로 한 영화 ‘역린’의 수식어들이다.
‘역린’은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스크린에 담았다. 정조 암살이라는 매서운 역사를 다룬 영화인 만큼 드라마 ‘이산’ 속 정조(이서진)의 따뜻한 미소를 떠올린다면 큰 오산이다. 현빈은 26세로 왕이 된 지 1년밖에 안 된 젊은 정조의 고뇌를 시종일관 드러낸다. ‘역린’ 속 정조는 젊지만 생기가 없다. 낮은 목소리톤과 침울한 표정, 의심에 찬 눈빛만이 있을 뿐이다. 필모그래피에 사극이라는 장르를 추가한 현빈을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근엄하고 중후한 기존의 왕 이미지와는 다른 연기를 하려고 했죠. 한 사람의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조보다는 인간 이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운명을 타고난 젊은 정조를 표현하기 위해 현빈의 목소리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이재규 감독과 가장 고심했던 부분도 대사 톤이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극 속 왕 역할의 대사 톤이 아닌 젊은 군주의 목소리, 그것을 상상해서 말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를 위해 매 장면의 목소리 톤을 맞춰가며 찍었어요.” 그래서인지 영화 속 현빈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차분한 음조로 대사를 읊는다. 목숨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는 경희궁 존현각 안에서 불안한 일상을 견뎌야 했던 정조의 긴장감은 이 같은 차분한 대사처리 덕분에 보다 정확히 스크린 밖으로 전달된다.
영화에서 정조는 긴장과 고달픔을 운동을 통해 해소하고 극복하려 한다. ‘역린’이 개봉하기 전부터 화제가 됐던 현빈의 화려한 ‘등 근육’이 탄생한 이유이다. “시나리오에 ‘팔 굽혀 펴기 하고 있는 정조. 등 근육이 세밀하다’라고 단 한 줄이 쓰여있었죠. 그 ‘세밀하다’는 표현 때문에 3개월 동안 열심히 운동을 했어요. 운동하는 장면이야 말로 정조가 존현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사극이 처음인 현빈에게 ‘역린’은 도전 그 자체였다. 활시위를 당기는 손기술과 승마술, 검술 여기에 등 근육을 위한 운동까지. 독특한 사극 분장과 의상 때문에 어려움도 컸다. “정조는 늘 출동 태세를 갖추고 앉아있는 군인같은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 정조는 그야말로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아요.”
영화 촬영 4, 5개월 전부터 준비작업에 들어간 현빈은 줄곧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두 달 넘게 배웠지만 “말타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는 현빈의 말에서 사극의 어려움이 물씬 풍겨온다. 영화는 현빈의 정조만 집중해서 비추지 않는다. 살수(청부살인자)로 키워져 왕의 목숨을 노리는 내시 상책 역의 배우 정재영과 을수 역의 조정석, 살수를 키우는 광백 역의 조재현 등이 현빈의 주변에서 연기력을 빛낸다.
현빈은 “좋은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 게 하나의 (흥행)요소가 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연이 한 명이 아닌 소위 ‘멀티 캐스팅’ 작품으로 보인다는 주변의 반응에도 솔직하게 답했다. “제대 후 처음 하는 작품이라 개인적인 부담감이 컸기 때문에 멀티 캐스팅이 오히려 좋았어요. 정재영, 조재현 등 선배들로부터 힘을 받아 즐거웠어요. ‘내가 주인공인 영화’라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어느새 30대 배우로 들어선 그. 앞으로 배우 현빈의 필모그래피는 어떻게 채워질까. “우선 ‘역린’으로 색다른 정조의 모습을 보여줬고, 사극 도전도 괜찮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영화 속에 나오는 글귀인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세상도 변화시킨다’(중용)를 매 순간 떠올리며, 항상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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