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했다. 유쾌했다.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고 얼굴엔 낙관이 가득했다. 그럴 만도 했다. 자신의 최신 영화 ‘표적’이 흥행 순항 중인데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관객들의 평도 호의적이니까.
유준상이 비리 경찰 송 반장으로 스크린의 한 축을 맡은 액션물 ‘표적’은 11일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달 30일 한날 개봉한 ‘역린’보다 100만명 가까운 흥행 격차를 보이고 있으나 뒷심이 강한 편이다. 일일 관객 수에서 ‘역린’을 바짝 쫓으며 장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영화진흥위원회 집계 10일 기준 ‘역린’은 23만7,368명, ‘표적’은 22만9,974명이 각각 하루 동안 관람했다).
메시지 전달에 대한 강박 없이 액션에 집중한 뚝심 있는 연출과 중년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가 ‘표적’의 인기 요인으로 분석된다. 특수부대원 출신 여훈(류승룡)의 사투를 돋보이게 하는 송 반장의 악랄한 행태가 극적 효과를 키운다. 관객들로부터 “악역의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 유준상을 지난 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준상은 “출연 배우 중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출연 확정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몇 번이나 출연 제안을 사양했다”고 했다. “초반 등장 장면이 너무 적은데 후반부에서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줘야 하는 역할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송 반장은 전반부에선 주변부를 맴돌다 중반 이후 여훈과 함께 영화를 이끈다. “(무사한 촬영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는 자리에서도 출연 안 하면 안 되냐고 제작사 대표에게 다시 물을 정도로 부담스러운” 배역이었다.
거듭되는 출연 요청에 시나리오를 다시 읽었다. 한 장면이 유준상을 사로잡았다. 송 반장이 꾸민 사건의 실체를 헤집던 강력반 여형사 영주(김성령)를 송 반장이 갑작스레 살해하며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제게 큰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는데 관객들도 똑같이 느끼리라 예상했어요. 개봉 뒤 이 장면에 대한 반응이 좋아 기분이 남달라요.”
“정형화된 인물이지만 역동적으로 그리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창감독을 찾았다. 촬영을 앞두고 간 워크숍 첫날 배우들과 집중 회의를 했다. 송 반장을 조직적으로 돕는 비리 형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회의 결과 형사들 각각의 사연이 만들어졌고 ‘각본 짜는 형사’ 송 반장이라는 정체도 명확해졌다. “자신감이 생겼고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자연스레 나왔다.”
“영주 등을 죽인 뒤에도 죄책감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송 반장을 연기”했다. 여훈의 동생 성훈(진구)을 죽도록 폭행하는 장면을 찍을 땐 “정말 사정 없이 때렸다.” “저를 보는 진구의 눈빛이 워낙 나쁘게 변해 나중엔 진구에게 맞는 장면이 들어간 영화는 절대 촬영하지 않아야겠다 생각할 정도”였다. “송 반장이 너무 악랄해 다시 촬영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왔으나 촬영이 끝난 뒤 모두 흡족했다.
‘표적’은 14일(현지시간) 막을 올리는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대됐다. 주로 개성 넘치는 상업영화들을 심야에 상영하는 비경쟁부문이다. 유준상은 ‘하하하’(2009)와 ‘다른 나라에서’(2012)에 이어 칸을 세 번째 찾는다. 그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기분은 좋다”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뮤지컬 ‘삼총사’와 ‘프랑켄슈타인’에 출연하며 스크린과 방송에도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는 그는 요즘 음반도 준비 중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정말 기타 잘 치는 신인과 ‘제이앤조이 트웨니’라는 그룹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유준상은 “제가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기타연주자가 바로 기타로 이를 연주해 휴대폰에 녹음한 뒤 이를 악보로 만들어 정식으로 녹음하고 있다”고 했다. “음반은 가을 발매가 목표에요. 이런 작업들이 제 (연기) 감성 유지에 많은 도움을 줘요. 저의 예술적 ‘촉’이 계속 살아있는 느낌을 주니까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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