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진흥원과 공동 기획
유물 자료 250여점 전시
제작부터 인쇄, 간행, 배포 과정
꼼꼼히 정리한 보고서 볼거리
전통시대의 한국 인쇄 출판에서 가장 널리 쓰인 것은 목판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알려진 8세기 통일신라의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비롯해 고려대장경과 조선의 많은 책이 목판으로 인쇄됐다. 지식 보급과 정보 유통의 매체로서 목판은 전통시대의 매스미디어인 셈이다.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6일 시작한 특별전 ‘목판, 지식의 숲을 거닐다’는 기록유산으로서 목판의 가치와 생활사적 의미를 돌아보는 자리다. 국내에서 목판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기획한 행사로 두 기관이 소장한 유물과 자료 250여점을 6월 23일까지 전시한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001년 개원 이후 꾸준히 목판을 수집해왔다. 국내에 현존하는 목판 약 20만장 중 6만5,000여장이 이 곳에 있는데 대부분 조선시대 유교 관련 책판이다.
전시 유물은 대동운부군옥 목판(보물 제878호), 퇴계 이황 문집 목판 등 책판이 가장 많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목판 제작과 인쇄, 간행과 배포의 전 과정을 꼼꼼하게 정리한 보고서다. ‘간소일기’ ‘간역일기’라는 제목으로 남은 이 자료들은 제작비 세목과 조달 방법, 간행위원과 글씨를 새긴 각수 등 전체 참여 인원, 발행 부수와 배포처 명단까지 빠짐없이 밝히고 있다.
가로 세로 각 1m가 넘는 대형 목판도 있다. 병곡 권구(1672~1749)가 후손들의 학습 교재용으로 만든 ‘중국고금역대연혁지도’ 판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주변국의 계보를 한 장에 담아 정리하고 끝부분에는 안동의 연혁까지 넣었다. 일종의 세계사 연표인 셈이다.
이번 전시는 서원과 정자의 현판, 편지지로 쓰던 시전지(詩箋紙) 판, 책 표지 인쇄에 쓰던 능화판, 목판으로 문양을 찍은 종이를 발라 멋을 낸 가구와 일상 소품 등 생활 유물을 함께 소개해 목판의 다양한 쓰임새를 보여준다. 현판만 따로 모은 코너에서는 퇴계 이황, 석봉 한호, 미수 허목,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등의 친필을 모사본이 아닌 진품으로 볼 수 있다.
목판 인쇄가 가장 성행한 때는 19세기 말이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일이어서 재력 있는 문중과 서원이 주도했다. 개인 문집을 비롯해 족보, 지리지, 의서, 학습교재 등이 목판으로 간행됐다. 문집은 많게는 300부까지 찍어서 서원과 향교에 무상으로 보급했다. 조선 건국 초기에 국가사업으로 낸 삼강행실도는 2,900부를 찍어서 전국에 배포했다는 기록이 있다.
목판 인쇄는 한국뿐 아니라 같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도 크게 발달했다. 베트남의 유교 책판 2만3,000여장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의 유교 책판은 이보다 훨씬 많고 보존 상태도 좋다. 문화재청은 올해 2월 한국국학진흥원의 유교 책판(718종 4만4,226장)을 세계기록유산 후보로 확정했다. 등재 여부는 내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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