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왔어 하며 지금도 현관문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
엄마는 네 방을 그대로 놔뒀단다.
너로 인해 살아 돌아온 많은 동생들이 훌륭하게 잘 커서
네 몫까지 좋은 일 많이 해 줄 거라 믿는다"
세월호 침몰 당시 끝까지 배에 남아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숨진 승무원 고 박지영(22)씨의 어머니가 언론에 처음으로 심경을 밝혔다. 사고 당시 세월호 3층 객실 안내데스크에 있던 박씨는 배가 급격히 기울자 학생들을 안심시키고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구조된 학생들에 따르면 박씨는 구명조끼를 입지 못한 한 여학생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준 뒤 “너희들 다 구하고 나중에 나갈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보여준 박씨는 이달 12일 의사자(義死者)로 인정됐다.
박씨의 어머니는 “아프고 힘들어 보니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며 “부디 고귀한 생명들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오래오래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용을 어머니가 박씨에게 보내는 편지 글로 재구성했다.
사랑하는 딸 지영아.
우리 딸이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
인천 집에 가면 지금도 네가 책상에 앉아 그렇게 좋아하던 소설책을 보며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보물 1호였던 노트북, 네가 쓰던 화장품,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방도 그대로 있단다. 네가 “엄마, 나 왔어. 배고프다”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
네가 퇴근해 배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엄마는 무척 설렜단다. 퇴근 전 네가 엄마한테 차려달라고 한 카레와 미역국. 우리 딸이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가장 먼저 찾던 음식이었잖아. 특별한 음식도 아닌데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엄마는 이제 네가 없는 밥상을 차릴 용기가 나지 않는구나.
공부 더 하고 싶다는 이야기 가끔 했었는데 가정 형편 때문에 제대로 뒷바라지 못해 미안해. 네가 세월호 일 좋아하긴 했지만 돈 넉넉했으면 이렇게 될 일 없었을 텐데.
네가 떠나고 엄마는 일부러 뉴스를 보지 않았단다. 보고 있으면 우리 딸 보고 싶은 마음에,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해 진도 팽목항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에 숨이 막히더구나. 우왕좌왕하는 실종자 구조작업, 선원들에 대한 수사를 엄마는 외면했단다. 누구보다 정의롭던 우리 딸이 그런 모습을 봤다면 엄마한테 한 소리했겠다. 미안해.
엄마가 13일 딸 보러 산소에 갔었잖아. “일하는 내내 잘 가르쳐주시고, 필요한 것은 없는지 챙겨주신다”며 네가 그토록 존경하던 양대홍 사무장님. 엄마가 산소에서 “네가 사무장님 손 붙잡고 나오라”고 얘기했었는데, 이틀 후 양 사무장님 돌아오셨단다. 우리 딸이 엄마 얘길 들어준 거니?
배에서 아이들 구해준 것처럼 단원고 동생들 아직도 바다에 많은데 네가 아이들 손 붙잡고 나와 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품으로 아이들 좀 데려다 줘.
사고 전날 엄마랑 나눈 마지막 통화 기억해? “동생 같은 애들이 정말 귀엽고 예뻐. 수학여행 가는 게 진짜 좋은 가봐. 나도 옛날 생각나”라면서 아이들과 있는 게 즐겁고 보람된다는 얘기. 애들 잘 챙겨주고 오라는 말에 넌 “엄마 딸 잘 알잖아. 애들 잘 챙길게”라고 대답했잖니.
조금만 서둘러 구조됐으면, 탈출하라는 방송만 했었으면, 사랑하는 너와 우리 아이들 모두 부모 곁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을 텐데.
사랑하는 지영아. 엄마는 우리 딸이 장하고 대견하다. 너로 인해 살아 돌아온 많은 동생들이 훌륭하게 잘 커서 네 몫까지 좋은 일 많이 해줄 거라고 믿어. 이제 부디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 발인 다음날 꿈에 나왔던 것처럼 또 찾아올 거지? 지영아 미안하고 사랑해. 내 아가.
진도=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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