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많은 상인들이 구입한 향신료의 대금을 지급하려고 금ㆍ은화로 가득 찬 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관리들은 매일 받는 돈의 액수가 엄청나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16세기 포르투갈 저술가 다미앙 드 고이스(1502~1574)가 인도에서는 향신료, 신대륙에서는 금과 은화를 쓸어왔던 수도 리스본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15세기 신대륙의 발견에서 18세기 후반까지 유럽을 풍미한 중상주의는 국부(國富)의 척도가 금과 은 등 귀금속의 축적에 있다고 여겼다.
▦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1750~1805)도 맥락은 다르지만, 중상주의적 사고를 했다. 그는 북학의에서 “육지의 재화는 중국과 통하지 않고, 해상의 재화는 일본에 안 간다. 교통은 혈맥과 같은데 통하지 않으면 민(民)이 살찔 리 없다. 교통이 없으면 공업이 발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재물은 우물과 같다. 우물물은 퍼서 쓸수록 자꾸만 가득 채워지는 것이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며 소비와 상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 국부의 원천이 생산성 향상에 있다는 현대적 생각은 애담 스미스(1723~1790)의 아이디어다. 그는 1776년 펴낸 국부론에서 국민이 쓸 수 있는 매년 생활필수품이나 편의품은 그 해 노동에 의해 산출된다고 보고, 국부 증대의 길은 같은 양의 노동을 투입해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해 내는 생산성 제고에 있다고 강조했다.
▦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최근 가계와 정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과 비금융자산을 더해 국부 통계를 내 놓았다. 2012년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7.7배인 1경630조원이다. 하지만 전체 국부 가운데 토지의 비중이 52%로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아 실속이 별로 없었다. 국부에 유형 자산만이 아니라 사회 신뢰도를 반영하는 사회적 자본 및 제도의 질적 수준을 포괄하는 무형 자산까지 더할 경우 선진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부동산에 대한 집착을 떨쳐 경제활력을 높이는 것 못지 않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을 쌓는 일은 이제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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