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여공의 삶
신순애 지음
한겨레출판 발행ㆍ328쪽ㆍ1만4,000원
열세 살에 청계천 평화시장의 작은 봉제공장 시다로 취직한 여공이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주체적인 노동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주인공이 직접 서술한 책이다. 1970년대 노동운동을 여성 노동자의 눈으로 정리한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 신애순(61)씨의 성공회대 NGO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을 수정ㆍ보완해 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나이 쉰이 넘어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원까지 가서 자신의 체험을 논문으로 썼다.
그는 1966년 시다로 시작해 미싱보조를 거쳐 1974년까지 미싱사로 일했다. 당시 천정 높이가 1m도 안 되는 다락방에서 종일 무릎을 꿇고 앉은 채 16~20시간씩 일해야 했다. 이 책은 어린 여공의 고난을 회고하는 수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잘 것 없는 여공이 노조에서 활동하면서 노동자로서 자기의식을 분명히 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퇴직금 투쟁, 한글 교육을 통해 함께 연대했던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전태일 분신을 계기로 일어난 1970년대 노동자 운동은 1980년 전두환 군부독재의 폭압에 짓밟혔다. 특히 여성 노동자는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이중의 억압을 받았다. 저자는 노동운동을 하면 빨갱이로 모는 사회적 낙인, 성 차별에 따른 억압과 성고문 위협, 재취업을 막는 블랙리스트가 노동운동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전체 5장으로 된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 운동사에서 큰 역할을 하고도 ‘왜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저자 자신도 빨갱이로 찍혔다. 그 바람에 1988년까지 10년간 열네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고, 가족들도 수시로 찾아오는 형사들에게 협박을 받았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이틀 전 가해자 문귀동이 여성 노동자를 성폭행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고, 이를 용기 있게 폭로한 피해자는 지금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다. 저자는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들 중에는 이런 사연을 지닌 채 역사의 뒤란에서 한을 삭이는 이들이 있다”고 전한다. 이들에게 노동운동은 자랑이 아니라 숨겨야 할 이력이 됐다.
1960~70년대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도 종로구 창신동 일대의 작은 공장들에서 밤 10시, 11시까지 미싱을 돌리는 50~60대 여성 노동자들은 10대 시절 평화시장에서 일을 한 사람이 많다. 4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저자는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을 위협했던 ‘빨갱이, 성 고문, 블랙리스트’ 대신 1990년대~2000년대 노동운동에서는 돈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을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읽어야 할 이유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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