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조지 쿠퍼 지음ㆍ김영배 옮김
리더스하우스 발행ㆍ292쪽ㆍ1만4,000원
경제원론 강의에는 빵과 감자 같이 두 개의 대체재만 생산하고 판매하는 가상의 마을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가격의 등락을 통해 두 상품의 수요와 공급이 조화롭게 조정되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가장 최적의 결과가 시장을 통해 자동으로 도출된다. 학생들은 이 예를 통해 효율적 시장가설이 논리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얼마나 완벽한 이론인가를 배운다. 그러나 갑자기 등장하는 수학등식을 이해하느라 효율적 시장가설이 숨기고 있는 전제에 대한 의구심은 가질 여유를 잃게 된다.
세상은 두세 개의 대체재로 구성된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더구나 효율적 시장가설은 빵과 감자 같은 상품에게만 적합할 뿐 비쌀수록 가치가 높아지고 수요가 늘어나는 사치재나 금융시장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빵과 감자 상점만 존재하는 세상에 주식을 파는 가게와 대출을 해주는 상점도 있다고 가정해 보자. 대출을 해주는 상점 즉 은행의 직원은 대출 고객의 담보물과 대출금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장사가 안돼 담보 가치 하락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고객, 즉 대출이 더 필요한 고객에게는 대출금의 일부를 갚도록 하거나 추가담보를 요구할 것이다. 반대로 사업이 잘돼 담보가치가 상승하고 대출이 필요 없는 고객을 찾아가서는 친절하게도 “돈을 더 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비 오는 데 우산을 빼앗는 상술”이란 비판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금융 때문에 자산 가격이 급등락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을 밖에서 이방인이 나타나 빵 가게 주식 100주를 사겠다고 한다. 이 빵 가게는 10억원짜리 회사이고 주식 1주는 1원이다. 주식 중개인은 회사가치대로 매도 가격 1.01원(거래 수수료 포함), 매수가격 1원을 제시하고 이방인은 결국 101원을 내고 주식 100주를 매입한 후 사라진다. 10억원짜리 회사에서 겨우 101원어치 주식 거래가 이뤄진 것뿐이지만 이 조그만 변화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다. 빵 가게 주가가 1원에서 1.01원으로 오른 것을 알게 된 은행직원은 빵 가게 가치가 10억원에서 10억1,000만원으로 1,000만원이 불어난 것으로 장부를 정리하고 이제 빵가게 주인은 1,000만원을 더 대출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연쇄효과를 일으켜 빵 가게의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다.
이런 메커니즘은 이방인이 빵 가게 주식 100주를 팔겠다고 나서도 동일하게 작동해 마을은 순식간에 신용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저자 조지 쿠퍼는 “상품시장에서 애덤 스미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을 최상의 상태로 이끄는 자애로운 힘을 지녔다. 반면, 자산시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은 라켓볼 경기를 하듯 시장을 반복적인 호황과 불황 사이클로 몰아붙인다”고 결론 짓는다.
이 책의 이런 재미있는 비유와 명확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경제학에 문외한인 독자들도 어느새 오늘날 전세계적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의 핵심에 도달하게 된다.
덤으로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이 많은 미국이 계속 돈을 찍어내며 외국으로부터 빚을 늘리고 있는데 왜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지, 또 미국이 올 하반기 테이퍼링(양적완화)을 종료하면 세계 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학적 지식을 갖출 수 있다.
책의 결론을 나름대로 요약하면 이렇다. 금융시장에는 효율적 시장가설이 작동하지 않는 만큼 주기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밖에 없고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의 은행 또는 최종대부자 역할을 할 존재(오늘날에는 중앙은행)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중앙은행의 존재 자체가 금융시장 참여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고 또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 이런 한계 때문에 중앙은행은 평상시에는 되도록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없는 척 지내다가, 위기가 발생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기간에 시장 붕괴를 막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전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책임자들은 정반대로 행동하며 최악의 금융위기를 불렀고 또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으로 상징되는 그들은 평상시에는 선제적 대응을 한다며 여기저기 개입해 금융시장의 과열을 부추기다가 막상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아직 가시화하지 않는 인플레이션 위협을 들먹이며 개입하기를 꺼려 위기를 장기화시킨다.
사족을 붙이자면, 난해한 용어와 수학공식을 앞세워 시장을 현혹하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이들은 그에 따른 천문학적 빚을 정부와 납세자에게 떠넘긴 채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악당 카이저소제처럼 큰 돈을 챙겨 유유히 사라진다.
정영오 경제부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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