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베트남의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이 베트남의 반(反)중 시위 확산과 중국인 사망자 발생으로 이어지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남중국해에서 강공을 펴온 중국이 주변국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보를 이어갈 지 주목된다.
현재 베트남 반중 시위의 피해 규모는 유동적인 상황이다. 베트남에 투자한 대만 기업 중 가장 큰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의 경우 이미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더 큰 문제는 사상자다. 일부 외신은 15일 현재 중국인 사망자가 1명이며, 부상자가 141명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현지에선 사망자가 10명을 넘는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인 10여명이 행방불명 상태란 점도 추가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이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1979년 전쟁 이후 최악으로 추락하며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 아니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반중 시위로 중국인이 사망한 데 대해 당황하는 기색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관련 보도에 경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반중 시위로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주중베트남 대사를 초치, 엄중하게 항의하고 중국인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했다.
대만은 교민 철수 대책을 마련하는 등 비상체제를 가동했다. 대만 외교부는 베트남 거주 대만인의 안전 대책 지원을 위해 응급구조체계를 마련, 가동에 들어갔다고 15일 밝혔다. 대만 외교부도 베트남에 자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만 경제부와 현지 언론은 이번 시위로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을 비롯 1,000개 이상의 베트남 진출 대만 기업이 직간접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했다.
이번 베트남의 반중 시위는 중국이 최근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베트남명 호앙사·중국명 시사군도) 해역에서 초대형 심해 석유 시추 장비를 일방적으로 설치하고 나선 데서 촉발됐다. 중국은 지난 4일 10억 달러의 고가인 축구장 크기의 심해 석유 시추 시설을 이 곳으로 이동시켰다. 중국은 이곳이 고유의 영토로 영유권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이 지역은 베트남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며 크게 반발했고, 해군 함정과 연안 경비대 초계함 등 29척을 급파했다. 지난 7일 분쟁 해역에선 양국 선박들이 서로 상대방을 들이받는 충돌전이 벌어졌다. 베트남은 중국측이 물대포 공격까지 감행했다고 비난했고 중국은 오히려 베트남 배들이 무려 171차례나 중국 민간 선박을 고의적으로 들이받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지난 13일부터 중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베트남 남부 빈즈엉 지역에서 반중시위가 일어나 시위대가 한자 간판을 내건 중국 및 대만 기업들에 들이닥쳐 집기를 부수고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14일과 15일엔 이러한 반중 시위가 베트남 중부 하띤 등 63개 성 가운데 22곳으로 확산됐다.
중국이 최근 남중국해에서 갑자기 공세에 나서게 된 배경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전략이 주춤해질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중국이 이를 기회 삼아 남중국해 공세를 적극 펼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중국의 국제 문제 전문가인 왕하이윈(王海運) 소장(少將)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이 다시 미국 및 서방과 러시아의 충돌 최일선으로 부상했다”며 “이에 따라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과 역량은 약해질 수 밖에 없어 중국으로서는 기회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특히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가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느슨한 편이어서 중국이 일부러 약한 고리를 공략한 것이란 해석도 없잖다.
중국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와도 남중국해 갈등을 겪고 있음에도 유독 베트남에서 강한 반중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데에 대해서는 베트남의 뿌리 깊은 반중 정서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 한무제(漢武帝)에 정복된 뒤 1,000여년간 중국의 지배에 저항했다. 결국 972년 독립했고 잇따른 송, 원, 명, 청나라의 침략도 모두 물리쳤다. 특히 이후 프랑스와 100년 가까이 싸워 승리했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도 이긴 나라여서, 민족 자긍심도 높다. 1979년에도 중국과 베트남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과 중국인 탄압 문제로 전쟁을 벌여 각각 2만6,000명과 3만여명이 숨지는 등 갈등을 겪었다.
한편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 알베르트 델 로사리오 필리핀 외무장관은 14일 중국이 몇 주 전부터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의 존슨 산호초(중국명 츠과아자오·赤瓜礁, 필리핀명 마비니 산호초) 해역에서 매립 작업과 구조물 건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공식 항의했다. 중국은 이 매립지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해당 지역을 전초 기지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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