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하라니까 구경을 하고, 지휘하라니까 사퇴를 하고, 보도하라니까 오보를 하고, 조사하라니까 조작을 하고, 조문하라니까 연출을 하고, 사과하라니까 대본을 읽고, 대책이 뭐냐니까 모금을 하고, 책임지라니까 남 탓을 하고….”
이 글은 요즘 인터넷 블로그, 게시판, 댓글 등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이다. 한 달 전 아침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 뉴스가 처음 보도된 후, 한 척의 여객선이 침몰해 300여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침몰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국민들은 언론의 보도 행태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분노의 대상이 된 뉴스 보도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는 사고 발생 직후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진도, 목포, 안산 등에 취재진을 파견해 세월호 침몰 참사 특보 체제에 들어갔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24시간 뉴스 특보 체제로 전환했고, 신문과 통신, 인터넷 등 대부분의 매체가 기자들을 파견해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여 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인터넷이나 기타 여기저기에서 떠돌아다니는 미확인 정보를 마구 쏟아내는 ‘카더라 저널리즘’, 정부의 발표 내용을 합리적 의심 없이 전달하는 ‘발표 저널리즘’ 혹은 ‘받아쓰기 저널리즘’, 구조와 대책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선정적인 표현과 영상을 과장해 보도하는 ‘옐로우 저널리즘’, 자극적인 제목과 이슈 키워드를 앞세워 낚시성 기사를 남발하는 인터넷 뉴스 사이트의 ‘어뷰징’ 등으로 나타났다. 그 속에서 정작 중요하게 보도해야 할 뉴스들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고,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현장과 뉴스 보도가 전혀 다르다고,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뉴스는 전부 거짓말이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메아리도 없는 외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공영방송이자 재난주관방송사 KBS는 물론 지상파와 종편채널, 주류 신문사들은 분노의 대상이 되었고, 많은 국민과 뉴스 이용자들은 주류 신문과 방송의 비윤리적인 보도를 거부하고 ‘뉴스 망명자’처럼 특정 인터넷 언론이나 해외 언론 보도를 찾아 헤매어야 했다.
세월호 참사와 언론 재난보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긴급 세미나와 토론회가 개최되고 있다. 주요 언론사에서는 반성과 자성의 목소리도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KBS의 경우, 입사 1~3년차 기자들이 사내 게시판에 반성문을 게재하고 연판장을 돌렸으며, KBS기자협회가 “사죄합니다, 반성합니다, 바꾸겠습니다”(5.10)라는 성명서 발표 후 “길환영 사장과 임창건 보도본부장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5.13). SBS의 모 기자는 자사 홈페이지에 “기자의 특권을 포기해서 죄송합니다”(5.9)라는 글을 올렸고, MBC 기자 121명은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5.13)라는 대국민사죄문을 발표했다. 비록 늦어도 너무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언론보도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단지 세월호 참사에 관한 오보 때문만인가?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각 언론사 사장이나 보도 책임자의 무책임한 행태와 망언 때문인가? 치열한 취재 경쟁과 언론사 내부의 조직문화 속에서 기자들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던가?
이번 대참사의 문제는 오보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휘, 조사, 조문, 사과, 대책, 책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 수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대한민국의 침몰이라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왜곡과 조작 역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언론보도의 기본적인 책임과 윤리에 대한 인식과 고민,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상식적 사고,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대부분의 신문사와 방송사들은 특보체제에서 일상적인 방송 편성과 보도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월드컵이 열리고 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문과 방송, 인터넷은 스포츠 기사로 도배 될 것이다. 세월호 대참사와 세월호 보도의 대참사가 한여름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집중호우식 저널리즘’의 행태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점검하며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그 속에 반드시 내재되어야 할 보도 윤리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대참사는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수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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