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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World] 선악이분법 '금단의 벽'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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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World] 선악이분법 '금단의 벽' 넘다

입력
2014.05.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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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수많은 기록을 남기며 신드롬을 낳고 있다. '겨울왕국'의 성공에는 이전 디즈니의 공주와 달리 복합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엘사의 캐릭터가 큰 역할을 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수많은 기록을 남기며 신드롬을 낳고 있다. '겨울왕국'의 성공에는 이전 디즈니의 공주와 달리 복합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엘사의 캐릭터가 큰 역할을 했다.

올해 초 영화계의 가장 큰 이슈는 ‘겨울왕국’이었다. ‘엘사 신드롬’이 세계를 강타했고, 주제곡 ‘렛잇고’는 귀가 닳도록 울려 퍼졌다.

어린 딸아이를 둔 부모들은 ‘겨울왕국’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성화에 못 이겨 같은 영화를 보러 두 세 번 극장을 찾아야 했고, VOD 서비스가 풀린 뒤엔 하루 종일 반복해서 ‘겨울왕국’을 틀어줘야 했다. 영화 속 대사를 거의 다 외우다시피 한 아이들은 주인공의 드레스를 입고 또래들과 함께 놀이터를 뛰어 다녔다.

‘겨울왕국’이 수립한 기록들은 매우 놀랍다. 영화는 전세계에서 12억달러(1조2,300억원)를 벌어들였다. 디즈니로선 ‘토이스토리3’를 넘는, 지금까지 최고의 흥행 기록이다. ‘겨울왕국’은 또 제8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제가상과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받아 2관왕에 올랐다. 디즈니가 제공한 유튜브용 공식 ‘렛잇고’ 동영상은 2억2,500만 조회수를 넘어섰고, 패러디물 등 관련 영상만도 1억개 넘게 올라있다. ‘렛잇고’는 빌보드차트에서 13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디즈니의 올해 2분기 순 이익률은 27%에 이르렀다. ‘겨울왕국’은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론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올해 어린이날 최고 많이 팔린 선물도 ‘겨울왕국’의 인형이었다고 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디즈니사가 판매한 엘사와 안나 인형은 3월 DVD가 발매되기 전에도 50만개를 넘어섰다. 디즈니영화 캐릭터 상품을 파는 전세계의 디즈니스토어에서 엘사의 의상 같은 인기 상품은 금세 동이 났다. 일부 한정상품으로 나온 인형과 드레스 등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 1,000파운드(173만원)가 넘기도 했다. 디즈니랜드 등 관련 테마파크에선 엘사와 안나 역을 맡은 캐릭터 배우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팬들이 6시간 넘게 기다렸고, 캐릭터 배우들은 ‘비틀스’급의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디즈니는 영화의 성공에 힘을 얻어 뮤지컬을 준비 중에 있다. 아직 구체적인 발표는 없지만 영화계에선 속편 제작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

가디언은 ‘겨울왕국’이 이전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다른 중요 요인으로 엘사를 지목했다. ‘겨울왕국’에도 여느 디즈니의 공주 이야기처럼 눈망울이 크고, 잘록한 허리의 공주가 등장한다. 엘사의 동생인 안나는 ‘라푼젤’이나 ‘메리다’ 처럼 용감하면서도 순진한 공주의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엘사는 달랐다.

영화의 모티브는 ‘눈의 여왕’이다. 디즈니는 과거 수 차례 이를 재해석하려고 했다. 2008년 처음 구상된 엘사는 한스와 안나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역이었다고 한다. 후에 제니퍼 리 감독을 만나 지금의 엘사로 다시 태어났다.

디즈니는 여성 직원들을 초대한 ‘시스터 서밋’이란 이벤트를 열어 어린 시절 자매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고 한다. 여동생이 느꼈을 오묘한 반목과 소원의 감정은 영화 삽입곡인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에 잘 드러난다. “우린 최고의 단짝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왜 그런지 이야기 해줄래?”

엘사의 캐릭터가 바뀐 것은 ‘렛잇고’ 덕도 크다.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듀오인 로버트 로페즈와 크리스틴 앤더슨은 영화의 대본이 만들어지던 중간에 이 노래를 완성했다. 복잡한 감성이 담겨있는 ‘렛잇고’ 노래를 듣고 제니퍼 리 감독은 단순한 악역이었던 엘사에 보다 복합적인 매력을 불어넣어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엘사의 캐릭터 변화로 선악이 분명한 여느 애니메이션과 달리 ‘겨울왕국’에는 절대적인 악당이 없다. 이 또한 ‘겨울왕국’이 이뤄낸 혁신의 하나다. 이 영화에서 물리쳐야 할 악은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과 수치심이란 감정이다.

‘겨울왕국’은 매우 진보적인 애니메이션이다. 다소곳하기 마련이던 공주들이 이 영화에선 진취적이고 자유분방하다. 잘 생긴 왕자는 뜻밖에도 음흉한 사기꾼이고, 착한 크리스토프도 영웅이 아닌 도우미 정도로만 활용된다. 영화는 ‘첫 눈에 반한 사랑’이나 ‘마법의 힘을 보여주는 사랑의 키스’ 같은 설정을 조롱하며 공주와 왕자의 이야기가 흔히 도달하는 뻔한 결말을 거부한다.

‘겨울왕국’은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 중 1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첫 영화이고, 주 관객층도 여성이다. 여성 영화는 영화계의 변방이라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유튜브에 엘사가 수동적인 다른 공주 캐릭터들을 모아놓고 야단을 치는 내용의 동영상이 올라 있다. “왜 남자들이 세상을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도 영웅이 될 수 있고, 내 식대로 할 수 있다고.”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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