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최근 경(京) 단위의 경제 통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경은 1조의 1만 배로 ‘0’이 무려 16개나 붙는다.
경 단위 경제 통계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파생상품 시장에서 등장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파생상품 거래규모는 2002년 1경1,508조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경 단위 통계가 쓰였다. 이후 계속해서 늘어나 최근에는 실물경제 분야도 대부분 경 단위를 훌쩍 넘는다.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이 보유한 순자산(국부) 규모가 2012년 말 기준 1경630조원을 넘어섰다. 작년 말 기준으로 국내 총 금융자산(1경2,630조원)이나 금융부채(1경302조원) 역시 경 단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통계 수치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화폐액면 단위를 단추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의 필요성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가치 변동 없이 기존의 화폐 단위를 일정 비율로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원화를 1,000분의 1로 단위를 낮추면 1,000원은 1원이 된다. 이렇게 되면 거래가 편리해지고 회계도 단순해진다. 또 1달러가 1원 수준으로 원화의 대외적 위상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는 것은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3월 인사청문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시행하면 부작용이 적지 않다”며 “지금 상황에서 화폐 단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화폐 단위를 바꾸려면 새 화폐 제조와 현금자동지급기 등 시스템 교체 등 경제적 비용 수조원이 필요하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있다. 예를 들면 950원짜리 물건을 1,000분의 1로 단위를 바꾸면 0.95원이 돼야 하지만 1원으로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 가나(2007년), 베네수엘라(2008년), 짐바브웨(2009년), 북한(2009년) 등이 화폐 단위를 낮췄다가 물가가 뛰고 암시장 환율이 크게 오르는 등 경제불안이 가중됐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는 화폐 단위를 낮춰야 한다”며 “기초경제가 튼튼하고 경제상황이 안정적일 때 적용해야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