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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바다

입력
2014.05.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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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오래지 않아 이렇게 부를 수도 생각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요즈음 이름 모를 물고기 떼가 자주 저를 건드리고 지나갑니다. 물고기들은 제가 누구인지 누구의 자식이었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요. 그들에겐 제가 사람의 형상을 한 물체일 뿐이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엄마의 자식입니다. 그동안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나 너무도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침 등교 시간이면 와글거리며 학교로 들어가는 많은 학생들 중에 저는 조금도 잘나지도 눈에 띄는 존재도 아니었지만 엄마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잘 생겼다고 하셨지요. 다 큰 아니 다 컸다고 생각하는 저를 안아주시고 뽀뽀하려 하실 적에는 민망하여 도망치기도 했지만 이젠 엄마의 따스한 손길과 넉넉한 품이 그립습니다. 엄마는 제가 더 보고프시겠지요. 엄마는 제게 여느 친구들처럼 노스페이스나 폴로 점퍼를 입히지 못하고 나이키나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기지 못한다고 안쓰러워 하셨지만 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저는 엄마의 자식이니까요.

저는 사랑도 못하고 진학도 못하고 취직도 못하고 도서관에도 PC방에도 가지 못하고 책도 읽지 못하고 음악도 듣지 못하고 수영도 못하고 야구도 못하지요. 알고 싶고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일이 그토록 많았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해나가겠지요. 엄마의 기억 속에 저는 언제나 18살 고등학교 2학년에 머물러 있겠지요. 밝고 맑은 기운이 뿜어 나오는 철없는 10대 청소년으로만 남아 있겠지요. 그날 아침의 안개는 짙어서 제주에 못갈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수학여행 따위 제주 따위 안가도 되었는데 억지로 출발한 것이 잘못이었지요. 시작부터 끝까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돌이켜 보면 안타까운 일이 한 둘이 아닙니다. 바다 건너 큰 나라는 우주의 바다를 넘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을 찾아가기도 하고 우리는 IT산업대국이라고도 하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다는 자축을 한 신문보도를 본 적이 있고 한류가 세계에 뻗어간다고도 한 것 같은데 왜 이런 희한한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고 깨진 거울은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하지만 돌이킬 수 있다면 돌이키고 싶습니다. 물론 엄마야 말로 더 그러시겠지요.

불교에서는 사람의 생명이 다하면 또 다른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꼭 불교의 윤회만이겠습니까. 저는 바닷물이 되고 물고기가 되고 미역이 되고 다시 햇빛이 되어 이 바다를 벗어날 것입니다. 빛이 된 저는 부메랑이 제자리로 돌아가듯 먼 먼 시간과 공간의 저쪽 내가 모르는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겠지요. 저는 아직 사람의 죄란 것이 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죄를 지을 시간조차 없었기에 당연히 좋은 곳에 가 있을 것입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그곳에 먼저 가 있을 터이니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아직 저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배가 기운 모습을 전화기로 촬영하여 보내고 카톡과 문자메시지를 보내던 친구들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너무 무서워 친구들과 손을 잡고 기도하기도 했고 덩치 큰 친구와 부둥켜안고 차가운 물을 견뎌보려고도 했지만 바다는 무심하더군요. 이제 조금씩 알 수 없는 기억들이 저의 의식 속 어느 곳에서 나와 섞이게 되겠지요. 지금이 제 기억과 의식이 가장 생생한 고비일 것입니다. 더 살아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저를 대신해서 사람들은 할 일을 해주겠지요. 제가 부를 수 있는 이름, ‘어머니’ 아니 ‘엄마’를 불러봅니다. 엄마! 들리지 않으시지요. 그래서 마음 놓고 부를 수 있는 동안에 부릅니다. 바다 밑에서 중얼거리는 이 자식의 무거운 목소리를 엄마는 결코 듣지 못하겠기에 제가 부를 수 있는 이 시간에 불러봅니다. 부디 안녕히 계세요. 다시 만날 그때까지.

진도 팽목항에서 바다 속에 있는 자식에게 음식을 던지는 어머니의 사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글은 소설가 최인훈의 바다의 편지의 오마주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최인훈 선생에게 누가 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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