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나 한약 재료로 쓸 계피(육계)를 고르라면 국산과 베트남산 중 어떤 걸 택할까. 대부분 주저 없이 국산을 고를 것이다. 특히 한약재는 비위생적이고 해로운 중국산 유통 소식이 끊이지 않는 탓에 ‘수입산=못 믿을 재료’라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수입산이 더 약효가 높고 품질이 좋은 한약재도 적지 않다.
국내 유통되는 계피는 주로 동남아시아산이다. 특히 베트남산 비중이 높다. 국산은 제주 일부 지역에서 나는 것이 소량 유통된다. 한방에선 계피를 두통과 흉통, 복통, 요통 같은 증상에 써왔다. 이런 효능을 나타내는 약용 부위는 계피 내부의 코르크층인데, 국산 계피는 베트남산에 비해 코르크층이 현저히 적다. 그만큼 약효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성질이 다른 한약재들이 잘 섞이게 하거나 해독 작용이 필요할 때 한방에선 감초를 쓴다. 감초는 98% 이상이 수입산이다. 국산은 충북 제천과 강원 영월, 정선 인근에서 재배되는데, 수입산에 비해 작고 얇으며 조직이 치밀해 리퀴리틴 등 약효를 내는 주요 성분들의 함량이 매우 낮다. 한방에선 중국 양외 지역에서 난 감초를 특히 우수한 것으로 친다.
이처럼 한약재는 상당수가 지역별로 약효 차이가 크다. 약재 종류마다 특히 효능이 우수한 산지가 각각 다르다는 소리다.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농산물을 특산물이라고 하는 것처럼, 한방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나 최상의 약성(藥性)을 함유한 약재를 ‘도지약재(道地藥材)’라고 부른다. 그 약재에 딱 알맞은 토양과 기후에서 자랐다는 의미도 된다. 한의원이 굳이 수입산 한약재를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상의 약효를 위해서는 무조건 국산 약재로만 조제하는 게 아니라 도지약재를 선별해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산이 도지약재인 경우는 오미자와 인삼, 진피, 영교 등이다. 이를테면 오미자는 기원은 중국이지만 문경이나 상주 등 경북 북부의 고지대에서 나는 게 약용으로서 더 품질이 좋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인삼은 우리 땅에 심어야 약성이 높게 자란다. 영교는 항염, 해열 작용 같은 효능이 국산이 뛰어나지만, 주로 조경용으로 사용되다 보니 약용이 점점 줄고 값도 비싸져 지금은 오히려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수입산이 도지약재인 경우는 계피와 정향, 감초, 마황, 후박 등으로 훨씬 많다. 단순히 값이 싸서가 아니라 외국의 토양과 기후에서 자란 약재가 약효나 품질이 더 낫기 때문에 수입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 유통 중인 전체 한약재 종류의 70% 이상이 수입산을 도지약재로 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령 후박은 100% 수입산이다. 도지약재로 꼽히는 후박은 중국(사천성)산으로 국산에 비해 맵고 쓴 맛이 강하고 향도 세다. 국산 후박은 약용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녹용은 러시아와 뉴질랜드산이 약효가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어느 지역에서 난 게 도지약재인지, 어느 한의원이 진짜 도지약재를 쓰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량 중국산 약재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니 한의원을 찾는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부가 엄격한 품질검사를 한다고 해도 소비자가 직접 산지나 유통과정을 확인할 수 없으니 신뢰도가 높아지긴 쉽지 않다.
이에 한약재 역시 농산물처럼 ‘이력’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한의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를 위한 시도도 최근 시작됐다. 한약재 생산ㆍ유통 기업 옴니허브는 도지약재 개념에 따라 지역별로 다양하게 재배된 한약재들의 생산과 유통 과정 등을 체계적으로 표준화한 다음, 이들 한약재를 공급받는 전국 한의원을 소비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한의사인 허담 옴니허브 대표는 “자신이 처방 받은 한약재가 어떻게 유통됐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한약을 믿고 찾는 소비자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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