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 직업병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은 14일 삼성의 사과와 보상 약속을 환영하며 이를 진일보한 태도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제3중재기구를 통한 논의가 아닌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이 얼마나 신속하게 성과를 낼 것인지는 조금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반올림 상임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이 종전 백혈병 산재 피해자를 ‘발병자’로 일컬은 것에 비해 오늘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고 첫 사과를 했다는 점에서 전향적 태도를 내놓은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올림은 이밖에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 삼성이 소홀했음을 인정한 점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산재인정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삼성이 개입해 왔던 것을 철회한다는 점 ▦보상 뿐 아니라 재발방지대책도 수립하는 등 성심성의껏 해결해나가겠다고 한 점에서 이번 사과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3중재기구를 통한 논의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앞서 4월 9일 심상정의원이 제3기구를 통한 보상 논의를 제안, 같은 달 14일 삼성이 수용 의사를 밝혔으나 반올림 측은 줄곧 직접 교섭을 요구해왔다. 지난해 12월 18일 처음 열린 백혈병 피해자와 반올림, 삼성전자의 직접 교섭에서 반올림의 요구안은 ▦산재보상과 관련해 피해가족과 활동가들에게 한 폭언, 폭행, 형사고소·고발에 대해 공개 사과 ▦고소·고발 취하 ▦각 사업장 취급 화학물질·방사선 정보 투명 공개 등이었다.
그러나 반올림도 삼성의 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어서 중재기구 구성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노무사는 “제3중재기구를 반올림이 먼저 제안하지 않았고, 삼성도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아 어떤 인물이 참석하고 운영하는지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며 “우선 중단된 직접 교섭을 재개해 보상을 논의하고, 이 과정에서 제3기구가 필요하다면 인물과 방식을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반올림을 교섭의 주체로 분명히 인정하고, 우리의 요구안에 성실히 답하라고 덧붙였다.
백혈병으로 2011년 첫 삼성전자 산재 피해를 인정받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역시 “우선 직접 교섭을 원칙으로 하되, 합의가 어려울 경우 삼성과 유가족이 모두 동의하는 제3의 중재인을 내세우는 안에는 합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피해자들은 산재 인정과 이번 사과는 별개라는 삼성의 대답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황상기 씨는 “산재 판단은 삼성 사장이 하는 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이 하는 것”라며 “사과의 진정성은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산재의 과학적 입증 여부와 상관없이 삼성 백혈병의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피해자 가족, 반올림과 성실하게 협상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제가 조정하거나 도울 일이 있다면 정성껏 돕겠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