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족이 눈앞에서 죽어갔어도 이러겠느냐”는 말은 하지 않겠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분란거리나 진영 논리화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순수 유가족이면 만나겠다”고 했다. 불순분자라도 있다는 건가? 순수의 기준은 뭔가? 냉장고의 냉장실 비슷한 영상 7도 새벽 추위에 청와대 앞 길바닥에서 밤을 꼬박 지새운 유가족들이 안쓰러워 모포 한 장, 따뜻한 보리차 한 컵 들고 나온 효자동 주민들이 불순분자라는 얘긴가? ‘대통령 책임’을 주장하면 ‘비순수 국민’이라는 얘기인가? 대변인의 말은 유가족에 대한 모독이자,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미국의 9ㆍ11 테러와 비교하며 “우리는 큰 사건만 나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한다”고 했다. 9ㆍ11은 외부 테러이고 세월호는 정부 무능이 야기한 참사인데, 사리에 맞지 않게 국민성을 들먹이며 비하했다.
서울 H대 김 모 교수가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청와대에서 시위하나. 유가족이 무슨 벼슬인양 생난리 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 먹는 거다”, “유가족에게 국민 혈세 한 푼도 주면 안 된다. 예의도 없는 짐승들에게 웬 지원?”이라고 썼다. 그는 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과, 안전행정부 자유총연맹 보조금심사담당을 지냈다. 권력 주변의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하이에나가 연상된다. 이런 일련의 발언은 무엇을 노리는 건가?
세월호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각종 담론 공간에 ‘묘한 흐름’이 감지된다. “▦대형사건마다 대통령책임을 묻는 건 미개 ▦야당은 지방선거에 이용하려는 작태를 중단하라 ▦유가족 배후에 불순 종북세력이 있는 것 같다” 등의 주장이나 댓글이 부쩍 늘고 있다. 요컨대 ‘참사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주장인데,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말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침묵 강요다. 생존과 안녕의 문제를 진영갈등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는 300여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자, 지진 때 슈퍼마켓을 터는 약탈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과, 책무를 다하지 못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위에서 예를 든 일련의 발언은 대통령을 아끼는 게 아니라, 대통령을 ‘헌법 미준수자’로 만드는 동시에 국민과 이간시키는 극약이다. 백 보 양보해서, 몇몇 망언은 국가와 정부를 혼동해서 빚어진 ‘애교’라 치자. 그러나 모종의 의도하에 참사를 진영논리로 치환시키려는 건 국민생존권에 대한 도전이다. 눈앞에서 수백 명이 죽어갔는데 어떻게 진영과 이념을 들먹이는가. “시체 장사, 제2의 5ㆍ18에 대비하라”같은 말을 내뱉는가. 납세의무를 이행한 국민이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안녕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다. 참사 원인을 해운사의 탐욕에서 찾으면 대한민국 옹호이고, 정부대처능력을 비판하면 대한민국 부정으로 몰고 가려는 음험한 시도를 규탄한다. 평형수가 부족해 그 큰 배가 침몰했는데, 그 참사를 겪고도 ‘생각의 평형’을 못 잡는가?
세월호로 인해 ‘4ㆍ16’이라는 또 하나의 상징 숫자가 만들어졌다. 3ㆍ15, 10ㆍ26, 12ㆍ12…등은 정치적이거나 정치 그 자체였다. 그러나 4ㆍ16은 성격이 다르다. 배의 침몰은 선사 책임이지만, 대규모 참사로 바뀐 건 정부 책임이다. 책임을 면하려 논점을 교란한다면 정치공학이자 꼼수다. 그런 꼼수로 타개될 위기가 아니다.
명토 박아서 말한다. 개조해야 할 것은 ‘국가’가 아니라 정부와 관료주의다. 4ㆍ16은 철저한 반성과 혁파, 구체제와의 결별을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 수습과정을 진영 문제로 치환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참사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4ㆍ16은 ‘인본(人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 동물농장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 마지막 기회다. 수백 명 목숨과 바꾼 기회다. 자본의 탐욕과 무능한 정부가 합작한 대규모 몰살사건의 관련자와 책임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고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이자 예의다.
이강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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