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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돼지 키워요" 동물복지 인증 축산농장 첫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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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돼지 키워요" 동물복지 인증 축산농장 첫 탄생

입력
2014.05.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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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시설은 황금알을 낳는 아우슈비츠다.”(고ㆍ故 박상표 국민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

공장식 돼지 농장은 돼지를 더 살찌우고, 더 많이, 더 빨리 기르도록 설계된다. 임신한 어미(모돈)는 몸에 꼭 끼는 철제 우리(스톨)에 들어간다. 새끼를 깔고 앉아 죽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모돈은 옴짝달싹할 못한 채 스무 날을 지낸다.

젖을 뗀 돼지는 다른 축사로 옮겨져 죽을 때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축사 바닥이 구멍 뚫린 철판이라 분변은 안 쌓이지만 돼지는 본성대로 땅을 팔 수 없다. 여러 마리가 함께 살기엔 공간도 좁다. 스트레스가 쌓인 돼지는 서로 꼬리를 물어 뜯고 병에 걸린다. 사람은 이를 막는다며 돼지의 꼬리와 송곳니를 자른다. 일부 농가는 감독당국 몰래 사료에 항생제를 섞는다. 돼지는 이렇게 태어난 순간부터 인공환경에서 고통을 받다 3, 4개월 뒤 도축장에서 생을 마친다.

여기 대안이 있다. 정부가 인도적 사육을 인증한 ‘동물복지 축산농장’이다. 전남 해남군 ‘강산이야기’ 농장은 돼지 농장으로는 처음으로 9일 농림축산검역본부로부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았다. 동물복지를 추구하는 돼지 농장은 여럿 있지만 정부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곳은 이 농장이 최초다.

강산이야기 돼지 2,900여 마리는 날 때부터 행복하다. 모돈은 스톨에서 5일 만에 풀려난다. 어미에게서 새끼를 떼어놓는 시점도 일반 농장(21일)보다 일주일 길다.

싸움이 없어 꼬리를 자를 필요도 없다. 돼지가 스트레스를 안 받기 때문이다. 축사는 일반 농장보다 2배 넓고 축사마다 흙 대신 톱밥이 60㎝ 높이로 깔았다. 돼지는 마음껏 톱밥에서 뒹굴고 파헤친다. 일반 농장과 달리 불도 밝아서 돼지는 자유롭게 운동한다.

환경도 깨끗하다. 농장 안 암모니아 수치는 복지농장 인증 기준의 70% 수준이다. 직원들이 분변을 자주 치우기 때문이다. 항생제도 안 먹인다. 직원이 매일 1번 이상 돼지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이상행동이나 질병을 발견하면 격리실에서 치료한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전국의 모든 돼지가 행복해질 날은 아직 멀다. 동물복지가 비용은 늘리는 반면 수익 증가는 보장되지 않는 탓이다. 때문에 제도가 시행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인증을 신청한 돼지 농장은 두 곳뿐이었다.

실제로 강산이야기 직원 수는 비슷한 규모 농장의 2배 수준이다. 관리가 까다로운 탓이다. 게다가 기른 돼지는 운동을 많이 해 지방이 적다. 강경채 강산이야기 부장은 “직접 기른 돼지를 햄, 소시지로 만들어 번 돈으로 농장 손해를 메운다”며 웃었다. 결국 농장동물의 행복은 농장도 정부도 아닌 소비자에게 달렸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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