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재고 떠넘기기, 판매목표 할당 등 본사와 대리점 사이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유형별로 구체화한 고시(告示)를 제정, 어제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고시는 추상적 상위 법령에 따른 구체적 시행 지침을 담은 것으로, 위법성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로써 지난해 ‘남양유업 사태’로 촉발된‘갑을(甲乙)논쟁’은 일단 고시로 마무리된 셈이다. 하지만 법과 시행령에 명문화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후진적 유통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번 고시에는 그 동안 지적돼 온 불공정행위들이 망라돼 있다. 나열된 것만 확실히 지켜져도 불공정행위는 상당부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본사의 판촉행사 비용을 대리점에 강요하는 행위, 인력파견 및 인건비를 전가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거래와 무관한 기부금ㆍ협찬금 요구도 제재를 받는다. 대리점이 판매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계약 중도해지, 제품공급 중단 등 불이익을 주지 못한다. 대리점주가 고시 위반 행위를 공정위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본사가 불이익을 주면 처벌된다.
지난해 남양유업 본사 영업직원의 폭언과 물량 밀어내기 사태에서 보듯 우리사회는 약탈적 ‘갑을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가맹점 본사는 이들을 상대로 수익보장 등을 앞세워 각종 불합리한 계약을 강요해 왔다. 또 비싼 가맹비를 받고는 기존 대리점 옆에 새 대리점을 내 주거나 직영점을 개설하는 반칙도 서슴지 않았다. 식품업체만이 아니라 자동차 대리점, 제과 대리점, 백화점 입점업체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상생의 문화가 취약한 유통업계 현실을 볼 때 고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약자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대리점거래공정화법(일명 남양유업방지법)’은 대리점주에게 본사와의 교섭권과 최대 10년까지 대리점 계약 갱신권 등을 주고 있다. 국회는 업계의 ‘갑을문화’를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는 방안들을 더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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