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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잘못 현세대에 물을 수 있나" 한중일 대학생 나선 비판,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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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잘못 현세대에 물을 수 있나" 한중일 대학생 나선 비판, 반박

입력
2014.05.1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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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일본의 과거사 왜곡으로 반목하고 있는 한중일 세 나라 대학생과 역사문제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샌델은 자신이 진행하는 일본 NHK 프로그램 ‘하버드 백열(白熱)교실’에서 ‘한중일의 미래를 말하자’라는 주제로 과거사, 역사의 책임, 애국심 등 화두를 던지며 학생들의 열띤 공방전을 이끌어냈다.

토론은 한국 아산서원 소속 대학생, 일본 도쿄대 게이오대, 중국 푸단대 등 한중일 대학생이 나라별로 8명씩 모두 24명 나와 영어와 일본어로 진행했다. NHK는 이 프로그램을 3월16일 도쿄 시부야의 NHK방송국에서 4시간 가량 녹화해 11일 저녁 7시부터 1시간50분 분량으로 편집해 방송했다.

일본은 구미열강에게서 아시아 지키려 했다

샌델은 일본의 도쿄올림픽 유치나 브라질 월드컵에서 일본과 브라질의 시합하는 경우 등 가벼운 질문으로 토론을 유도했다. 참가자들은 “도쿄올림픽은 동아시아 전체에 경제적 플러스 요인이 생기는 만큼 찬성한다”“우승 경험이 많은 브라질보다는 일본의 선전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샌델은 이어 월드컵에서 자국 선수를 응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애국심’ 때문이라고 답했다.

토론 분위기가 무르익자 샌델은 애국심과 역사의 관계를 직접 화두로 던졌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역사가 현재 한중일 3국에 영향을 미치며 대립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같은 시기 전쟁을 겪은 프랑스와 영국과의 관계와 너무 다르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 대학생은 “(과거)전쟁은 우리에게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살고 있고, 어르신들로부터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며 “하지만 일본은 교과서에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표기하지 않고 있어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본 대학생은 “일본의 교과서에는 미국을 비롯한 구미열강이 동아시아를 지배하려고 했기에 일본이 이를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견해도 적고 있다”며 “오히려 한국과 중국이 이런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중국 대학생이 반박하고 나섰다. “일본의 정치가와 군인이 동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논리를 펴지만 중국과 한국이 이를 동의한 것은 아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해놓고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수주의에 입각한 역사기술이 일본에만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있었다. 한국 참가자는 “우리 역시 베트남전 당시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한 것과 유사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런 점을 교과서에 거론하면 불리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대학생 역시 “중국교과서에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당시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세대의 잘못을 내가 왜 사과 하나”

이야기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 사죄를 주제로 삼자 토론장에 사뭇 열기가 감돌았다. 중국 참가자는 “예전에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토론을 준비하면서 일본이 과거 침략전쟁을 반성한다는 담화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대학생의 말이 끝나자 샌델은 이 담화가 1995년 무라야마 담화라며 담화의 내용을 읽었다.

한국 대학생은 “일본이 무라야마 담화 외에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사죄한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를 재검토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며 “이를 보면서 일본이 과연 진심으로 사죄할 뜻이 있었는지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일본 대학생의 반발이 불거졌다. 일본 대표로 참가한 한 대학생은 “과거의 잘못을 내가 한 것이라면 책임을 지거나 사죄하겠지만 과거 세대가 저지른 행위를 왜 내가 대신 사죄해야 하는 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일본 참석자도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도, 위안부 문제도 인정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이 한국에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를 두고 다소 격앙된 분위기를 띠자 샌델은 돌연 미국 노예제도 이야기를 꺼냈다. 미 의회에서 노예제도에 대한 반성으로 흑인 노예의 후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한 의원이 과거 선조의 잘못을 이제 와서 후손들이 갚아야 하느냐며 반발한 사례다. 과거 세대의 잘못에 지금 세대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따져보자는 것이었다.

일본 대학생은 “한국인 친구가 일본에 살면서 차별 발언(헤이트 스피치)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일본인을 대표해 사과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같은 일본인으로서 도덕적인 책임을 공감하고 사죄 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솔직한 토론이 한중일간 이해 도울 것

미국의 존재가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한일 대학생과 중국 대학생의 생각이 달랐다. 한국과 일본 대학생은 “한국과 일본은 미국을 동맹국으로 인식하며 서로 돕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비슷한 의견이었다.

반면 중국 참가자는 “미국은 20세기 들어 인권과 자유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수 차례 전쟁을 일으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경험이 있다”며 “중국은 이런 미국을 신용할 수 없어 스스로 힘을 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지역 긴장을 초래하는 결과가 됐다”고 주장했다. 중국측 패널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센카쿠 문제가 있지만 이는 중일 양국이 풀어야 하는데도 미국이 개입해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며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나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아시아에 널리 확산되고 있는 한류문화가 세 나라간 교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중국 참가자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케이팝을 좋아한다”며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과거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중국 대학생은 “최근 한국과 일본의 방송이 중국에 침투, 중국의 독자적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며 “이는 엄연한 문화침략”이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샌델은 토론을 마치며 “한중일 관계는 너무 복잡해 풀기 어려운 숙제라고 생각했지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다”며 “민감한 현안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상호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샌델 갈등 피하지 말자고 토론 제안

1953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마이클 샌델은 영국 옥스퍼드대 발리올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수료, 27세에 하버드대 정치철학과 교수가 됐다. 샌델이 20여년간 해온 ‘정의’ 강의는 하버드대 역사상 가장 많은 학생이 수강했다. 행복, 자유, 미덕 등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에 바탕을 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 일본 등 동양권 국가에서 특히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도 100만권이 넘게 팔렸고, 수차례 방한 강연을 열기도 했다.

백열교실은 NHK 위성채널(BS)이 전세계 유명대학 교수의 토론 강의를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다. 특정 사안을 토론을 통해 백열등처럼 환하게 비추자는 취지에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 한국인으로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자신의 저서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주제로 네 차례 강의했다.

샌델의 강의는 2011년 4월 16일 ‘마이클 샌델 궁극의 선택, 대지진 특별 강의-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첫 전파를 탔다. 이후 ‘빈라덴 살해에 정의는 있는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올림픽 정의와 부정을 가르는 것’ 등을 주제로 심도 있는 강의가 이어져 일본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NHK는 당초 샌델과 한중일 대학생 토론을 기획하면서 꿈이나 고민 등 가벼운 소재를 다루려고 했다. 과거사 문제를 논의했다가 자칫 험악한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실제 녹화에서 역사 문제 등 세 나라의 민감한 현안까지 토론 주제로 삼은 것은 샌델이 “실존하는 갈등을 없는 척 하면 갈등은 오히려 커진다”며 성역 없이 다루자고 제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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