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위험하고 심각한 상태입니다. 집단적인 돌발 행동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예사롭지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국제적 베테랑 심리 치료사들이었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 유족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한마디로 이같이 진단하는 표정에는 난감함이 넘쳐났다. 지난 9일 세월호 참사 희생 유족들을 돕기 위해 입국한 글로벌 심리 치료 민간 구호 단체인 이스라엘의 ‘이스라에이드’(IsraAID) 소속 전문가들을 서울 여의도 굿피플 사무실에서 만나 처음 들어본 그들의 소견은 그랬다. 국제구호개발 비영리시민단체(NGO)인 굿피플은 이스라엘 대형 벤처캐피털 기업인 요즈마 그룹과 함께 이번 이스라에이드의 심리 치료 방한을 도왔다.
요탐 폴리저(32) 이스라에이드 아시아 지국장은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있었던 다른 나라 사례와 차원이 다른 큰 재앙”이라며 “자연재해나 우연하게 발생한 사고가 아닌 인재이기 때문에 그만큼 치유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피해자들의 내상 정도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지난달 말 세월호 참사와 관련 사고 현장을 찾아 피해자들의 상태를 직접 파악한 뒤, 이번에 이스라엘에서 30년 이상 경력의 심리 치료 전문가들을 다시 이끌고 방한했다. 이들은 앞으로 약 2년간 세월호 참사와 관련, 현장인 진도 및 안산 지역에서 국내 상담사와 피해자들에게 맞춤형 심리 치료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스라에이드는 테러와 전쟁 등에 따른 공포나 불안에 휩싸인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 2001년 설립된 민간구호단체로, 현재 세계 22개국에서 활동 중이다. 미국 9ㆍ11테러(2001년)와 아이티 지진(2010년), 일본 대지진(2011년), 필리핀 하이옌 태풍 피해(2013년) 등 전 세계에서 터진 각종 대형 참사에 전문 심리 치료단을 파견,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준 국제적 도우미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 이스라에이드 방한 선발대엔 어린 시절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아픈 기억을 가진 회원들이 포함됐다. 8세 때 전쟁으로 아버지와 사별한 아브논 칼레브(60) 이스라엘 하이파대 심리 치료학과 교수는 “아주 어린 나이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잃어 현재 세월호 피해 가족들의 슬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그 때는 지금처럼 심리 치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또 “지금 희생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슬픔과 좌절, 죄책감 등을 포함해 고통스럽게 얽힌 내면의 감정을 어떻게 하든 외부로 표출하게 하는 것”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자들이 혼자 이를 감당하게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시점에선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에게 친구로서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심리적인 안정뿐 아니라 미래의 삶에 대한 동기 부여도 치료에서 병행돼야 한다는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유가족들을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고 품어주면서도 그들의 장점을 찾아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려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보다 구체적인 심리 치료 방법론도 소개했다. 초등학교 시절, 역시 사고로 아버지와 이별한 경험이 있는 슐로밋 브래슬러(59) 하이파대 심리 치료학과 교수는 “죽은 사람의 사진을 보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이야기하게 하는 것도 유용한 심리 치료법”이라며 “현재 감정 상태를 있는 그대로 글을 쓰게 하거나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도 좋은 심리 치료 방법의 하나”라고 언급했다.
특히 피해자들의 심리상황을 볼 때 치료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요탐 이스라에이드 아시아 지국장은 “세월호 참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단순히 특정 지역(안산)에만 국한될 상황은 아니다”라며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체계적인 심리 치료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스라에이드는 앞으로 서울과 안산, 진도 등에서 국내 심리 치료 전문가들에게 필요한 워크숍 등을 지속해서 개최할 예정이며 연말까지 우리나라에 20여명의 이스라엘 심리 치료 전문가들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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