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노장들이 빚어 올린 극단 황금가지의 뮤지컬 ‘오필리어’가 고전 읽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페미니즘의 렌즈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되짚어 여성성이 갖는 다면성을 부각시켰고, 복수극이라는 원작의 줄기는 사랑의 이야기로 물구나무 세웠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 그대를 만나야 해 / 어디로,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나.”미친 척하는 햄릿에 절망해 물귀신이 되는 오필리어는 더 이상 없다. 그녀는 “찬란했던 내 사랑”을 찾아 길 떠나는 당찬 여성이다. 남성의 폭력으로 일그러졌던 정의가 여성성의 이름으로 복원된다는 해석이다.
“순정이라는 전통적 여인상의 인물로서만 그려져 온 오필리어 상(像)에 대해 오랫동안 품어 온 의문의 결과다.” 기존의 ‘햄릿’에 대한 탈출을 염두에 두고 벌여온 7년 동안의 작업을 김명곤씨는 그렇게 말했다. 이르자면 대본ㆍ연출자인 셈이다. 21세기 젊은 여성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기존의 ‘햄릿’으로 부터 벗어나는 데 5년 걸렸다니 고전의 무게가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무분별한 패러디는 하지 말자는 노장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황석영의 ‘바리데기’마냥 생명을 향한 모진 역정 속으로 오필리어를 밀어넣은 것이다.“셰익스피어가 벌떡 일어나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라고 반 농담 한다.
뮤지컬의 설득력은 노래에서 나온다. 최우정 서울대 작곡과 교수의 조용한 혁명이 인상적이다. 솔로 아리아와 듀엣은 발라드 뺨치고 합창은 압도적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아랑’을 통해 검증된 우리말로 노래 잣기 역량이 대중적 차원으로 이월한 셈이다. 민요와 뽕짝까지 마다 않는 그의 순발력이 놀랍다. 자신의 국악적 이미지를 불식, 모든 음악적 문제를 최 교수에게 일임한 김명곤씨의 감각 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객석은 선영(오필리어), 이지혜( “ ), 김민철(햄릿) 등의 찌를 듯한 가창력에 더 높은 점수를 줄지도 모른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광대 연기도 겸하는 KoN이 무대를 활보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16일~25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장병욱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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