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35)씨는 3년 전 구입한 승용차 정비를 하지 않다가 며칠 전 종합점검을 받았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새 차인데 설마’하는 안일함이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씨는 “앞으로는 20개월 된 딸을 위해서라도 주기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세월호 참사, 서울 지하철 추돌 등 쉬지 않고 터지는 대형사고가 ‘안전 신드롬’을 확산시키고 있다.
나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자
시민들이 각종 사고에 대비하는 모습은 일상에서 수시로 목격된다. 극장 술집 등에서 비상구 위치와 대피로를 확인하거나 차를 타면 안전벨트부터 매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광역버스로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김모(38)씨는 “예전에는 벨트를 채울 때 ‘찰칵’ 소리가 나면 눈치가 보였는데 이제는 승객 대부분이 벨트를 맨다”고 전했다.
연로한 부모의 운전을 말리는 자녀들도 생겼다. 박모(52)씨는 “70대 아버지의 운전 경력이 40년이 넘지만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어 운전을 그만하시라고 권했다”며 “세월호 참사를 접한 뒤라 아버지도 심사숙고 중”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이모(36)씨는 지난달 말 케이블방송에서 운전자보험 광고를 보고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이씨는 “매달 보험료로 나가는 1만원이 아까워 2년 전 해지했는데 요즘 마음이 불안해 다시 가입했다”고 말했다. 주부 이희선(35)씨는 암벽 등반을 즐기는 남편 걱정에 노심초사다. 그는 “위험하니 그만두라고 해도 듣지 않아 장비를 새 것으로 바꿔줬다”면서 “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시내 시민안전체험관 두 곳의 예약 전화는 연일 쉬지 않고 울린다. 5월은 이미 예약이 다 찼다. 보라매안전체험관 관계자는 “예약 문의전화가 이전보다 두 배 정도 늘었고, 단체와 개인 비율도 6대4에서 4대6으로 역전됐다”고 설명했다.
최고의 가치 ‘안전’, 얼마나 갈까
높아진 안전의식은 개인을 넘어 기업과 단체 등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업계 최대 행사인 중소기업주간(12~16일)의 이슈를 ‘안전’으로 정하고, ‘안전문화 확산 및 경제활력 다짐대회’를 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학생 생명 및 안전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정해 12일부터 학생 안전망 구축 캠페인을 펼친다.
기업들도 일제히 안전관리 강화에 돌입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다음날 전 임직원에게 안전점검 강화 지시를 내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말 전 회원사에 사업장 안전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성수대교(1994년)와 삼풍백화점(1995년) 붕괴 사고 때도 지금처럼 온 사회가 들끓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잊혀졌고, 참사는 되풀이됐다. 과적으로 인한 복원력 상실, 무리한 출항, 불량 구명벌 등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당시 지적된 문제들은 21년 만에 세월호 사고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높아진 안전의식을 효과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과제”라며 “정부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입법기관과 시민단체는 물론 국민 모두 나서서 계속 주문, 확인,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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