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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View] 철가방 소년ㆍ9급 공무원 특급호텔 식당 총괄셰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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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View] 철가방 소년ㆍ9급 공무원 특급호텔 식당 총괄셰프가 되다

입력
2014.05.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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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가 된 철가방

“우리 아들 다 컸네, 이제 배달가도 되겠다.”

이제 갓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화교 소년은 그렇게 배달 전문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음식 배달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철가방'을 들고, 10년을 뛰어 다녔다. 중국음식점이라면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 임패리얼팰리스 호텔의 중식당 총괄 셰프인 진속림(37)씨의 얘기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배달 일을 도왔고, 화교라 주변에 중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 계통은 정말 싫었어요.”

진 씨의 꿈은 가업을 잇는 것이 아니라, 무역업이었다. 그래서 중국어 능력을 바탕으로 무역업을 하기 위해 동국대 경상학부에 진학했다. 하지만 넉넉지 않았던 가정 형편에 외환위기(IMF) 까지 겹치면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할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익숙했던 중국 음식점에 취직했다. 진 씨는 서울 청담동의 고급 중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요리가 아니라 청소를 하고 양파, 해물 등 재료를 손질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프라이팬을 잡게 되면서 진 씨의 꿈이 바뀌어 버렸다. “선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요리를 직접 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요리한 음식이 나갔는데, 10분도 안 돼 호출을 당했어요.”

‘큰 일 났구나’ 싶어 달려간 진 씨 앞에서 단골 손님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여기 단골인데 오늘 먹은 식사가 최고로 맛있었다는 칭찬을 들었죠. 앞으로 내 요리를 부탁한다는 말까지 했어요. 태어나서 그 때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습니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요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진 씨는 그때부터 퇴근하면 쉬지 않고 요리를 연구했다. ‘깐풍요리 양념은 15초 안에 만들어야 맵고 달고 시고 짭짤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는 등 자신만의 비법이 쌓여갔다. 더불어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이들도 늘어갔다.

그렇게 진 씨의 요리는 입소문을 탔고, 급기야 내로라하는 일류 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왔다. 이후 그는 리츠칼튼호텔, 더 플라자 등 서울 시내 특급호텔에서 경험을 쌓은 후 2012년 말 특1급 호텔인 임피리얼팰리스호텔 부주방장으로 승격했다.

지난해에는 더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외부 베테랑 주방장과 요리 오디션을 펼친 끝에 총괄주방장 타이틀을 거머쥔 것. 회장, 사장, 총지배인, VIP 고객 등이 모인 자리에서 그의 요리가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최근에는 굴소스로 유명한 ‘이금기’사가 주최한 ‘영 셰프 국제중식요리대회’에서 동상까지 수상했다.

그 결과 그는 지난해 36세 나이로 임패리얼팰리스 서울 호텔의 중식당 천산의 총괄 셰프가 됐다. 모든 국내 특급호텔을 통틀어 총괄 셰프 중에서는 최연소다. 보통 특급호텔 총괄 셰프는 40대 중반이다.

운명이란 정말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걸까. 중국음식 만드는 일만은 피하려 했던 그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중화요리 쉐프가 됐다.

“이젠 끝장을 봐야죠. 이 분야의 최고의 대가가 되는 게 꿈입니다. ”

스시 장인이 된 말단 공무원

임패리얼팰리스 서울 호텔에는 또 다른 신화적인 셰프가 있다. 일식당 ‘만요’의 총괄 셰프까지 오른 권오준(50)씨. 그는 특이하게도 공무원 출신이다.

권 씨는 대학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뒤 기술직 9급 공무원이 됐다. 1년 반 가량 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아내와 부산에 놀러 가서 난생 처음 초밥(스시)을 먹었는데, 그 맛에 반했어요. 여기에 내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초밥 요리를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을 결심했죠. 이왕 배울 거면 초밥의 본고장으로 가야죠.”

원래 권 씨는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고교 시절 자취하는 친구집에 놀러 가면 호떡 같은 간식을 곧잘 만들어주곤 했다. “맛있다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았어요.”

하지만 서른을 넘은 나이에 가장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일본 유학을 간다고 하자,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했으니, 말 할 게 없죠.”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권 씨의 신념을 아무도 꺾지 못했다. 그는 무작정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초밥집 거리에 가서 간판이 오래된 곳을 들어갔다. 일본말을 할 줄 몰라서 작성해 온 이력서만 무조건 내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찾아간 곳은 100년이 넘은 유명 초밥집 ‘스시하츠’였다.

무려 세 번이나 퇴짜를 맞은 끝에 겨우 일을 할 수 있었다. 초밥집 사장은 이력서에 적힌 반듯한 한문 손글씨를 본 뒤 기회를 줬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성실하고 손재주가 좋을 것이라고 봤답니다.”

그렇게 초밥집에서 새 삶을 시작한 권 씨는 남다른 성실함으로 꾸준히 초밥 요리를 배웠다. 이후 권위 있는 여행정보안내서 미슐랭가이드에서 별 2개(별 3개가 최고점)를 받은 ‘스시사이토우’와 일본 최대 규모의 고급 초밥 레스토랑인 ‘스시잔마이’등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20년 가까이 일본에서 생활한 끝에 귀국한 그는 2010년 말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에 합류했다. 안정된 공무원 직을 그만두고 무작정 일본행을 택한 그의 '무모한 도전'은 간절한 열망과 노력을 통해 결국 그에게 총괄 쉐프 자리를 선사했다.

“제가 만들어 준 초밥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때 가장 행복해요. 그래서 공무원을 그만 둔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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