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모두가 팔십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근심 다 제하고 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아차 한 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 생전에 일 배 주만도 못 하느니라.”
판소리 ‘사철가’의 한 대목은 우리 인간이 실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길이는 정작 얼마 되지 않으니 짧은 인생 사는 동안 남과 나누며 베풀고 살라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지위가 높든 낮든 모든 인간은 단지 길고 짧을 뿐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는데도 우리는 늘 자기 자신과의 협상이나 타협에는 관대하고 내 관점으로만 모든 것을 생각하며 산다. 마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듯 내가 세상 사람의 기준이고 모범인 양 천동설적으로 살아가기 쉽다.
세상은 주고받는 거래라고도 할 수 있다. 받은 다음에 주려고 한다면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한밤에 등불을 들고 길을 걷는 까닭이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나가는 정상인을 위한 행위라는 인도의 성자 바바 하리 다스의 예화는 다른 사람을 위한 진정한 나눔과 배려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나눔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존재임을 인식하는 자각에서부터 시작한다. 배려란 다른 사람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는 바로 나를 위한 배려다. 그러나 우리는 나눔을 위해 나를 양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면 그만큼 손해 보고 성공이 늦어질 것만 같이 느낀다. 성공하려면 나눔이나 배려보다는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통념 때문일 것이다. 전철이나 버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남보다 항상 먼저 타려 하고 내 좌석번호가 이미 정해져 있어도 양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려와 성공, 배려와 경쟁은 이율배반적일지는 몰라도 배려는 더불어 사는 삶에 있어 윤활유의 역할을 하며, 성공하는 사람 대부분이 남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임을 고려하면 우리는 배려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짧은 세상 어쩌면 나누고 배려하는 사람들과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의 힘이 있었기에 지탱해가는지도 모른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나의 가정에 행복을 채움은 물론이고, 주변에 슬픔이 가득한 사람에겐 위로와 사랑을 베풀어 보자. 특히 우리 가정이 있기 전에 우리네 부모님들이 계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차 하는 순간 부모님들은 다시는 보지 못하는 머나먼 강을 건너고 만다. 사후에 만반진수는 살아생전 소주 한잔 보다 못하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5월엔 찾아뵙고 얼굴 한번 마주해 작은 봉투라도 챙겨 호주머니에 넣어드리는 감사를 표해보자.
한편으론, 5월이 애도와 슬픔을 함께 나누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버이날이라고 아버지인 나에게 고1 막내 녀석이 선물을 건넨다. 평소 말대꾸와 부모 속을 그렇게도 섞이고 공부도 썩 잘하지 못하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내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또 한편,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도 함께 느껴진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가슴이 시리다. 아직도 길 떠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꿈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사랑한단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길 떠난 우리 아이들은 세월호를 타고 머나먼 수학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오열로 쓰러지는 부모들을 보노라면 그 악몽이 다시 살아난다. 마음이 천근같이 무겁고 가슴 아프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난 꽃 같은 아이들에게는 머리 숙여 인사하고, 가족들에게는 깊은 애도를 표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로 온 가족이 즐겁고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차야 할 시기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세월호 참사로 분통 터지고 가슴 아픈 가족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애도하는 5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섭 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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