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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아들 생일인데 떠나보내려니…" 가슴 쥐어뜯은 父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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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아들 생일인데 떠나보내려니…" 가슴 쥐어뜯은 父情

입력
2014.05.0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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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검은 상복 왼쪽 가슴 부분에는 ‘謹弔(근조)’ 글씨 위에 하얀 국화 한 송이가 수놓아져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면,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들이 어버이날 어김없이 두 손으로 붉은색 카네이션을 정성스레 꽂아줬을 그 자리였다. 가시도 없는 국화이건만 그 뒤에 가려진 아버지의 가슴은 내내 아리기만 했다.

어버이날인 8일 경기 의왕시 오전동 시티병원 장례식장. 국화 수백 송이에 둘러싸인 영정 사진 속에서 교복을 말끔히 입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안산 단원고 2학년 임모(17)군은 제법 듬직해 보였다. 하얀 얼굴에서 여린 티도 났다. 지난해 3월 입학식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그런 아들을 몇 번이고 올려다 보던 임군의 아버지(44)는 “어버이날 아침이면 이것저것 든 선물상자와 함께 가슴팍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등교하던 내 아들”이라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망연자실한 아버지는 기력이 없어 빈소에 주저앉아 아들 곁을 지키다 조문객이 오면 힘겹게 일어서서 예를 갖췄다. 그의 스마트폰 배경화면에는 아직도 아들이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 당일인 지난달 16일 오전 아들이 배 안에서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낸 마지막 선물이다.(본보 1일자 8면)

임군은 참사가 난 지 무려 21일이 지난 6일 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간 임군의 부모는 주검을 실은 해경 경비정이 입항하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 머물며 말도 못할 기다림의 고통을 수없이 곱씹어야 했다. 임군의 어머니는 눈물을 닦을 천을 손에 꼭 쥔 채 조문객을 맞았다. 임군의 할머니는 살가운 손자가 곁에 없다는 상실감으로 흐느꼈다.

임군의 고모부는 “홀로 계신 할머니가 적적하실까 봐 공부하다가도 짬이 나면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인 할머니 댁을 찾아 어깨를 주무르며 말동무를 해주곤 했다”면서 “과묵하고 차분하게 제 할 일 하는 참 어른스러운 아이”라고 했다. 임군은 “가끔 군것질도 하면서 공부해라”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낡은 가스레인지를 바꾸고 새 전자레인지를 들였다. 그렇게 부엌 곳곳에 임군이 마련한 살림살이들이 가득하다. 아버지는 “직접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면서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이면 뭐든 다 했던 아들”이라고 했다.

빈소가 마련된 지 이틀 째인 이날 조문객들은 양쪽으로 늘어선 근조 화환 20여개를 따라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았다. 어른들도 임군의 영정에 고개 숙여 애도를 표했다.

이날 오후 빈소 귀퉁이에는 케이크가 담긴 상자 하나가 놓였다. 9일 임군의 생일이 되면 영정 앞에 놓을 생일 케이크다. 임군 어머니의 친구가 준비했다. 생일상을 받아야 할 날 임군은 모교인 단원고와 안산 선부동 집,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돌아본 뒤 수원 화장장으로 간다.

의왕=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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