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해 뒷조사를 한 정황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크게 두 갈래다. 지난해 6월 하순 민정수석실(특별감찰반) 중심으로 교육문화수석실, 고용복지수석실 등이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모군 모자의 개인정보를 전방위로 수집했고, 이에 앞서 6월 11일에는 총무비서관실의 조오영(54) 전 행정관이 조이제(53)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을 통해 채군 가족관계등록부를 불법 조회했다.
검찰은 7일 전자에 대해서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정당한 감찰 활동’이라고 밝혔고, 후자 역시 개인의 일탈 행위로 판단해 조 전 행정관 등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그동안 청와대가 주장해 온 논리와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결론이다. 특히 검찰은 청와대 윗선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은 채 결론을 내려 끼워맞추기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면죄부
검찰이 채 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55)씨 모자에 대한 청와대의 전방위 정보 수집에 대해 불법 사찰 및 ‘정권에 밉보인 검찰총장 찍어내기’ 등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면죄부를 준 것은 그동안 수사 과정과 방식에서 이미 감지됐다.
검찰은 먼저 민정수석실 등의 뒷조사가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직무권한 내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임씨가 채 전 총장의 부인으로 행세하며 사건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했다’는 첩보가 입수돼 고위공직자 감찰 차원에서 정보 수집이 필요했다는 청와대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실제로 첩보를 수집했다는 특감반원 김모 경정은 자진해서 검찰에 이 같은 취지의 진술서를 제출했고 검찰은 이를 별다른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검찰은 특히 김 경정에게 첩보를 제공한 인물이 누구인지, 청와대 윗선의 지시는 없었는지 등 중요한 맥락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더구나 김 경정에 대해 소환 조사 한 번 없이 수사를 마무리한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지적이 높다.
정보수집 실행자에 대해 물렁한 조사가 이뤄지다 보니 윗선 수사는 하나마나 한 형태로 진행됐다. 배후로 의심 받았던 곽상도 당시 민정수석은 수사검사가 곽 전 수석 집 근처로 찾아가 대면 조사를 하는 데 그쳤다. 이는 정식조사가 아니라 단순히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로 검찰이 처음부터 수사 의지가 없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생활 영역인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 여부를 밝히기 위해 증거수집에 열을 올리며 수사력을 집중한 사실과 비교하면 검찰은 더욱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소 행정관의 배후세력 규명도 실패
조 전 행정관과 송모 국가정보원 정보관이 지난해 6월 11일 조 국장을 통해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한 이유도 검찰은 밝혀내지 못했다. 조 전 행정관은 업무적으로 채군의 정보를 알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 이를 지시한 인물에 관심이 쏠렸다. 실제로 그는 엉뚱한 사람들 이름을 대며 줄곧 수사를 방해해 윗선의 존재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이들의 범행이 이뤄진 지난해 6월 11일은 채 전 총장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날이다. 정권 차원에서는 채 전 총장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고, 국정원도 조직 논리상 채 전 총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 게 당시 기류였다. 채 전 총장을 흠집내기 위해 불법적으로 뒷조사를 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검찰의 하다 만 수사로 사건의 실체는 결국 미궁에 빠졌다.
채 전 총장 뒷조사가 정당하지 못했다는 정황은 청와대의 거짓 해명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지난해 6월부터 뒷조사가 이뤄졌는데도 이정현 홍보수석은 지난해 9월 “조선일보 보도 이후 특별감찰이 이뤄졌다”고 밝혀 논란을 키웠다.
특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이번 수사의 맥락을 무시한 채 기계적인 결론을 내렸다”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를 초토화하기 위해 들인 노력의 절반 정도만 이번 수사에 투입했어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고 지적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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