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위험한 노인이고 싶다.”
영화 ‘은교’의 원작 소설로 유명한 작가 박범신이 다시 한 번 ‘위험한 소설’을 내놨다. 지난해 발표한 소금에 이어 1년 만에 내놓은 마흔 한번째 장편소설 소소한 풍경(자음과모음 발행)이다. 두 여자와 한 남자가 함께 살며 정삼각형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이야기, 흔히 말하는 ‘스리섬’(3인의 성관계)이 소재다.
은교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설정이지만 소소한 풍경엔 노인이 미성년자를 탐하는 내용도 없고 배타적인 소유욕이나 증오가 섞인 질투도 없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은 책 끝부분의 해설에 “은교와 가장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먼 이야기”라고 썼다. 7일 만난 박범신은 “은교가 늙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이 우선이라면 소소한 풍경은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슬픔을 말하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은 한때 작가를 지망했던 여자 주인공 ㄱ이 대학 시절 교수였던 작가 ‘나’에게 전화해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셨어요?”라고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30대 초반의 ㄱ은 결혼에 실패한 후 화자가 살고 있는 곳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도시 소소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집주인에게 억울하게 내쫓긴 남자 ㄴ을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한다. 한 달 후 압록강 근처에서 온 탈북자 처녀 ㄷ이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문을 두드린다. 가족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사는 세 사람은 한 집에서 살며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소소한 풍경에는 뚜렷한 플롯이 없다. 화자도 소설가인 나로 시작해 ㄱ이 말하는 나, ㄴ이 말하는 나 그리고 다시 소설가인 나로 돌아온다. 박범신은 “지금까지 배워온 소설적 구조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했는데 좀 어정쩡하게 됐다”고 했다. 기존의 틀을 깨는 건 작가에게도 낯선 일이었다. 그는 이 소설을 쓰는 매 순간 “실패했다고 느꼈다”며 “내가 잘 쓸 수 있는 소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교정을 보면서 맨 앞부분에 쓴 걸 뒤로 옮기기도 하고 뒷부분에 쓴 걸 앞으로 이동하는 등 고생스러운 작업은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스리섬’이라곤 하지만 성적인 묘사가 강렬한 작품은 아니다. 작가가 성적 욕망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박범신은 “지난 20년간 나를 사로잡은 건 성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불멸에 대한 욕망”이라며 “이번 소설은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소한 풍경에선 사람의 본성 밑바닥에서 물방울처럼 뭔가 뽀르르 올라오는 것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생의 비밀이라고 하는, 알 수 없는 게 밑바닥에 존재한다고 믿어요. 물 밑에 있어 볼 수 없지만 신호처럼 올라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 이미지를 소설의 감수성이 아니라 시적인 감수성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고경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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