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대추나무 아래 개집을 만들었다. 아비는 풍산개고 어미는 진돗개인 강아지들에게 목사리를 채우고 싶지 않아 텃밭에 울타리를 둘렀다. 목책(木柵)을 만들기 위해 벌목한 산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져 날랐다. 하루면 끝날 줄 알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안 쓰는 스테인리스그릇 두 개를 꺼내 밥그릇과 물그릇으로 내놓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녀석들은 밥그릇 물그릇을 엎거나 밟고 다녔다. 주둥이와 발로 바닥의 흙을 파헤쳐 물그릇에 흙이 들어갔다. 하는 수 없이 꼭지가 달린 물병을 철망에 달아주었다. 혓바닥으로 물을 핥아 먹는 녀석들을 보면서 어미의 젖꼭지를 떠올렸다. 녀석들은 물을 핥아 먹다가 쇠로 된 물병 꼭지를 깨물어 비틀곤 했다. 낑낑거리며 울타리 안을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안쓰러워 마당에 내놓았다. 신이 나 뛰어다니던 녀석들은 생각난 듯이 물병 주위를 맴돌았다. 낑낑거리며 물병 꼭지를 빨기 위해 철망 사이에 발을 집어넣거나 주둥이를 갖다 대고 비벼댔다.
10여 년 전 경기도 시흥시에 살 때 진돗개 한 쌍을 키웠다. 형의 월세방에 얹혀살던 때의 일이다. 대문안에 개집 두 개를 만들고 녀석들을 엉키지 않게 묶어놓았다. 콘크리트 바닥의 배설물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수돗물 호스를 틀어 청소를 했지만 밖에 나갔다오면 똑같아졌다. 녀석들은 유난히 경쟁심이 강했다. 특히 먹는 것 앞에서는 악바리였다. 녀석들의 경계에 밥그릇을 놓고 사료를 주었는데 서로 많이 먹겠다고 으르렁거렸다. 밥그릇을 엎는 건 예사였고 상대방의 영역으로 떨어진 사료를 한 알이라도 더 먹으려고 발로 갈퀴 질을 해댔다. 사료만 먹는 녀석들이 불쌍해 식당에서 살이 조금 남은 뼈를 얻어다 주었다. 그때마다 녀석들은 서로 많이 먹으려고 덩치 큰 뼈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처음에는 탈이 날까 걱정을 했는데 딴딴한 똥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약수터로 산책을 나갈 때면 녀석들을 데리고 나갔다. 얼마나 힘이 좋은지 양쪽으로 들입다 뛰는 녀석들을 잡다 보면 기진맥진해졌다. 줄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녀석들을 쫓아다니느라 초주검이 되었다. 하루는 암컷의 줄을 놓쳤는데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집에 돌아와 녀석을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돌아온 녀석은 발바닥에 유리가 박혀 쩔뚝거렸다. 피를 많이 흘려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사료를 퍼주자 녀석은 언제 아팠냐는 듯 먹는 것에 집중했다.
며칠 집을 비울 일이 생겨 옆 박스공장 사장님께 개 사료를 부탁했다. 아침저녁으로 한 바가지씩 사료를 퍼주면 되는 일이었다. 늦은 저녁에 돌아와 개밥그릇을 보고 의아해졌다. 웬일인지 개밥그릇에는 사료가 가득하였다. 녀석들은 어디가 아픈지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잔뜩 토라졌는지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걱정이 되어 개의 눈을 뒤집어보고 홀쭉한 몸에서 열이 나는지 손을 짚어보았다. 녀석들은 땡볕의 열기가 남은 지저분한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숨을 할딱거렸다. 형이 바닥 청소를 하려고 수돗물을 틀자 녀석들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몇 번이나 물그릇을 비운 녀석들은 밥그릇의 사료를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 박스공장 사장님이 며칠 동안 물을 주지 않은 것이다.
슈퍼를 정리한 형이 산에서 살기 위해 떠나는 아침이었다. 1톤 트럭에 단출한 살림살이와 개집을 실었다. 자기 집 안에서 낑낑거리는 녀석들이 입김을 뿜었다. 트럭이 골목을 벗어나고 녀석들이 짖는 소리가 길게 늘어났다.
하루 종일 콘크리트 바닥에서 뒹굴던 녀석들이 느낀 허기를 느꼈다. 언제나 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폭음한 새벽에 일어나 물을 아무리 마셔도 원초적인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형이 이사 간 산으로 사람들과 찾아갔다. 평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물그릇을 찾았다. 잽싸게 물가로 간 형이 스테인리스 그릇에 물을 떠 왔다. 시원한 물을 들이켠 다음 어디선가 많이 본 그릇을 확인했다. 테두리에 이빨 자국이 촘촘히 박혀있고 바닥이 사정없이 긁혀 있었다.
이윤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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