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지하철 2호선 추돌 사고는 4일간이나 위험한 질주를 한 끝에 벌어진 인재(人災)였다. 하루 평균 145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2호선은 사고 4일 전 신호기 연동장치 데이터를 수정한 상태였지만 3일 뒤에야 오류를 발견했고, 오류를 발견하고서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사고가 났다. 추돌 사고가 사망자 없이 부상 249명으로 끝난 게 천우신조였을 정도다.
위험천만 4일간 운행
6일 서울경찰청 열차사고수사본부가 밝힌 2호선 추돌 사고의 1차 원인은 신호기 오류다. 후행 열차(2260)는 상왕십리역에 도착할 때까지 약 200m 간격으로 세워진 신호기 세 개를 차례로 통과해야 한다. 선행 열차(2258)가 상왕십리역에 정차해 있으면 첫 신호기에는 노란색(주의), 두번째와 세번째에는 빨간색(정지)이 들어와야 하지만 신호기 오류로 첫번째와 두번째 신호에 초록색(진행)이 켜졌다. 이로 인해 신호기와 연동하는 자동정지장치(ATS)가 작동하지 않았고 2260열차 기관사 엄모(45)씨는 세번째 정지신호를 보고서 비상 급제동을 했지만 열차는 약 128m를 더 진행해 시속 15㎞의 속도로 2258열차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앞서 지난달 29일 오전 1시 20분쯤 서울메트로는 을지로입구역~신당역 구간 제한속도를 바꾸기 위해 을지로입구역(내선) 선로전환기에서 신호기 연동장치 데이터를 수정했다. 이전에는 시속 45㎞인 제한속도를 25㎞로 낮췄다가 다시 45㎞로 높인 구간이었는데 이를 똑같이 시속 45㎞로 통일한 것이다. 서울메트로 측은 경찰조사에서 “수정 작업 뒤 2시간 정도 점검을 했다”고 밝혔지만 사전에 오류를 파악하지 못했다.
서울메트로 직원이 신호 오류를 발견한 것은 사고 14시간 전인 이달 2일 오전 1시 30분쯤이지만 사실상 4일 간 신호 오류 속에 지하철이 운행된 것이다. 2260열차 기관사 엄씨는 “운행 시 신호기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라며 “신호가 잘못되면 관제소에서 연락이 오는데 위에서도 몰랐다고 한다”고 밝혔다.
현장 따로, 관제소 따로
사고 당일 선행 2258열차가 상왕십리역에서 1분 30초간 정차해 있었던 것도 서울메트로 종합관제소에서는 인지하지 못했다. 이 열차는 사고 직전 출입문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아 스크린 도어를 3번 개폐하는 등 출발이 1분 30초간 지연됐지만 종합관제소에는 보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열차 운행이 지연되거나, 지연 우려가 있을 경우 기관사는 지체 없이 관제소에 보고해야 한다.
종합관제소는 이름이 무색하게 추돌 사고도 상왕십리역 승객이 승강장 비상전화로 신고한 뒤에야 파악했다. 만약 대형사고였다면 1초가 급한 순간이지만 사고 발생 뒤 약 2분이나 흐른 시점이다. 상황판에 빨간 불이 들어왔지만 열차 지연으로만 판단한 것이다. 관제소 측은 경찰조사에서 “출퇴근 시간에는 열차가 붙어서 운행하는 게 통상적이고, 앞 뒤 열차의 간격이 좁아질 경우 앞 열차에 대해서만 회복 운행을 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노후 장비가 추돌 사고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살펴 볼 예정이다. 서울메트로는 외부 신호기와 연동하지 않고도 열차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자동열차운행장치(ATO)를 8년 전부터 도입 중이지만 2호선 80여 대 중에는 35대만 ATO가 장착됐다. ATO가 진일보한 제어기술이어도 예산 문제 때문에 2012년 끝내려던 전체 열차 장착이 지연되고 있다. 반면,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5~8호선 열차들은 모두 ATO를 갖췄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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