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하 해과원)이 주축이 돼 개발한 평형수처리설비 기술은 80조원대 세계시장의 문을 열며 주목 받았지만 채 10년이 되지 않아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기술을 개발한 해과원을 젖히고 한국선급을 시험기관으로 추진하겠다는 해수부의 비상식적인 움직임에서 세월호 침몰 참사의 근본원인으로 지목되는 정경 유착이라는 부패의 고리가 어른거린다.
해과원은 2006년 선박평형수를 국제해사기구(IMO)의 수질기준에 맞게 정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민간 벤처업체에 이양한 뒤, 미국의 독립시험기관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추진했다. 벤처 테크로스를 통해 상용화에 성공한 해과원의 평형수처리기술은 당시로서는 일반화되지 않았던 전기분해 방식을 이용한 것으로 2008년 IMO의 최종승인을 받아 국내 조선설비 분야의 총아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4월 평형수처리설비 기술개발을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로 극찬하면서 정치권의 지원도 이어져 지난 2월 선박평형수관리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해양수산부는 처음에는 해과원을 필두로 미국 독립시험기관 자격을 획득해 우리 기업의 세계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중순 국회에서 열린 선박평형수관리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한국선급 고위 관계자가 “한국선급이 미국 독립시험기관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해수부가 국무회의에서 해과원을 미국 독립시험기관으로 인정 받도록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선급과 장비업체들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해수부가 한국선급 및 장비업체 관계자 18명, 국내 장비시험기관 관계자 5명, 해과원 관계자 3명이 참석한 중재회의를 개최해 한국선급 단독으로 미국 독립시험기관 신청을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과원은 “미국은 시험기관 선정시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시험기관의 독립성을 꼽고 있다”며 선박장비 검사 업무를 하며 업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선급의 선정에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업체들은 장비검사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한국선급의 이익을 위해 동원됐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한국선급은 형식상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정부로부터 선박검사를 위임받은 독립기관이지만 해수부 공직자 출신들이 임원을 맡는 등 해수부와 해운업계 간 유착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또한 정관계에 대한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업계 입장에서는 한국선급이 검사를 하면 해과원이 하는 것보다 통과가 더 쉬울 것이라는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국선급이 미국 독립시험기관으로 선정되면 해마다 수십억원의 검사비용을 받게 되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며 “현재도 장비업체들에게 철저한 갑을 관계로 군림하는 한국선급의 권한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해과원은 기술을 이전했을 때도 정부의 법률지원 미비로 제대로 로열티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사업을 확장할 자금력이 없었던 테크로스의 이모 대표는 평형수 처리설비 기술력 하나만으로 305억원을 받고 리홈쿠첸(전 부방그룹)에 테크로스 매각을 결정했고 그 무렵 리홈쿠첸의 주식은 4배 이상 급등해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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