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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진도체육관은 건출적 도움도 필요했다

입력
2014.05.0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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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도, 어떤 생각도 세월호 참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나라 전체를 뒤덮고 있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주제의 칼럼을 쓰려 해도, 이내 진도 앞바다를 처절하게 메우고 있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 사회는 예고된 재난조차 방지할 능력도, 재난의 피해를 수습할 능력도 없다. 세월호 선원과 선박회사의 비정한 이기주의, 구조 당국의 무능함, 정부의 무책임에 국민들은 절망한다. 그럼에도 유일한 희망의 빛이 있다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도우려는 국민들의 마음과 자발적인 손길들이다.

진도에 모인 수많은 자원봉사자는 가족들의 식사와 빨래부터, 의료지원, 통신과 수송 지원 등 다양한 분야를 돕고 있다. 그러나 가족들의 임시 거처에 대한 효율적인 지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진도체육관에는 20일이 넘도록 생사조차 모르는 자식들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머무르고 있다. 뻥 뚫린 하나의 공간에 밤낮없이 환하게 밝은 조명 아래서, 한때 천 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뒤엉켜 지내는 모습은 난민촌의 난민이나 역대합실의 노숙자를 방불케 한다. 프라이버시 보장은 차치하고 불면증과 신경쇠약, 만성 피로증후군 등 정신적 육체적 질병까지 우려할 수준이다. 물론 차가운 바닷속에 잠겨있을 자식들을 생각하면 자신들의 고통과 불편쯤이야 참아야 한다고 가족들은 여길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임시 생활이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건강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거주 환경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정부와 전문가들에게 있다.

매우 대조적인 사진이 몇 언론에 소개되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이와테 현의 한 고교 체육관에 설치된 이재민 피난소 시설이다. 폐종이 파이프로 간단한 골조를 만들고, 광목으로 칸막이를 설치하여 최소한의 가족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이 시설의 설계자는 세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올해 수상한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이다. 짧은 기간 사용할 임시 시설이어서 가장 소박한 재료와 구조를 사용했지만, 세계적 건축가라 하더라도 즉흥적으로 설계하기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는 이미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종이 파이프를 이용한 임시 주거를 실현하여 이재민들에게 큰 도움을 준 경험이 있다. 더 나아가 ‘자원봉사 건축가 네트워크’라는 NGO까지 조직했다. 평소의 관심과 축적된 노하우를 동일본 대지진 때 발휘한 것이다.

재난을 구호하기 위한 건축 전문가들의 노력은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 출신 건축가 캐머런 싱클레어가 설립한 ‘인도주의를 위한 건축’ 운동이다. 전쟁이나 지진 등 재난적 고통을 디자인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동남아 쓰나미 등 세계 곳곳에서 건축적 구호로 큰 도움을 주었다. 재난의 피해자들을 위해 “당신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디자인으로 보여주라”는 이들의 전문가적 자세와 노력은 2006년 TED상 수상으로 평가되었다. 국경 없는 기자단이나 의사회와 같이, 전문가 자원집단인 ‘국경 없는 엔지니어들’은 내전 지역의 임시 병원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왔다. 영국의 NGO ‘쉘터박스(쉼터상자)’는 재난지역의 생존에 필요한 텐트와 10인용 식료품이 든 상자를 공급해왔고, 2007년부터 북한지역의 수재민까지 지원하고 있다.

순수 민간인인 이들은 건축가의 역할을 부유한 이들의 집만 짓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봉사와 전 지구적 구호까지 확대하고 있다. 피난처인 쉘터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의 가치는 결코 봉사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새들의 둥지와 같이 쉘터는 가장 단순한 건축의 형태이며, 건축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쉘터를 설계하고 재난을 구호하는 작업은 건축의 본질을 다시 발견하고 창조하는 전문가적 의무이기도 하다. 국내 건축계에는 아직 재난과 쉘터에 대한 각성도, 준비도 없다. 300명이 넘는 귀중한 목숨을, 그 대부분인 어린 학생들을 수장시킨 기성세대의 책임에 더해서, 유가족들의 최소한 거주도 돌보지 못한 건축 전문인으로서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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