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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공화국

입력
2014.05.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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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는 비타민B와 칼륨 등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이다. 대장암과 유방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 열량이 높으면서도 섬유질이 많아 비만의 염려가 없고 흡수도 빠르다. 그래서 프로골퍼들이 라운드 중 가장 즐겨 먹는 게 바나나다. 이 좋은 과일이 정치적으로는 ‘겉은 아시아인(황인종)이면서 속은 백인인 체하는 사람’을 뜻하는 경멸적 표현으로 쓰인다. 까만 비스킷 속에 하얀 크림이 든 ‘오레오 쿠키’가 백인을 동경하는 흑인을 멸시하는 비유인 것과 비슷하다.

▦ 지난달 말 영국 프로축구 경기에서 관중이 던진 바나나를 브라질 출신의 수비수 아우베스가 주워 먹은 사건 이후 지구촌에 바나나 열풍이 거세다. 축구스타 네이마르를 비롯한 유럽리그 선수들이 바나나를 먹는 SNS 캠페인에 동참했고, 브라질 톱 모델 리마는 노란색 비키니를 입고 ‘아우베스를 위한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물론, 교황, 이탈리아 총리, 브라질 대통령까지 ‘바나나 연대’에 나섰다. 아우베스는 경기 후 “누군지 모르지만 내게 더 많은 에너지를 줘 고맙다”고 했다.

▦ 비슷한 때 미국프로농구(NBA) 로스앤젤레스 클리퍼드의 구단주 스털링이 여자친구와 통화한 인종차별 발언이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네가 (흑인들과) 잠을 자든 상관없지만 공개적인 자리에 같이 다니지 말라”, “매직 존슨의 사진을 올리지 말라” 등등. 오바마 대통령까지 “믿을 수 없이 불쾌한 인종차별”이라고 비난한 이 사건으로 스털링은 사상 처음으로 NBA에서 영구 제명되고 250만달러(26억원)의 벌금을 받았다. 구단도 강제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 바나나 같은 농산품 수출에 의존하면서 서구자본에 경제가 예속된 나라를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잎새의 작가 오 헨리가 단편 양배추와 왕들에서 처음 썼다는데,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쉽게 썩는 바나나의 성질을 빗댄 말이다.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나카라과 등 중남미 국가를 지칭하던 이 말은 부패정치, 관료주의, 이권남용, 독재, 극심한 빈부격차 등으로 신음하는 후진국이란 의미로 확대됐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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