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세월호 선사의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비리 혐의를 수사중인 가운데 1990년대 초 사정당국이 ㈜세모의 차명계좌로 의심한 비자금 추산 규모만 1,000억 원대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부분 동일한 비밀번호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30일 전직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국세청은 1991년 8월부터 9개월 동안 ㈜세모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벌여 차명 의심계좌들을 추적했다. 차명 액수 규모가 총 1,000억여 원으로 파악됐는데, 차명계좌 추적의 단서는 비밀번호였다. 이 관계자는 “세모 차명으로 의심되는 계좌의 비밀번호는 대부분 ‘3535’나 ‘9191’이었다”며 “현재 유씨의 비자금 수사에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3535’는 ‘세모세모’, ‘9191’은 유씨가 설립한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의 ‘구원구원’을 의미한다. 유씨는 세모, 세월호 등 수많은 계열사와 여객선의 이름을 직접 짓고 상표사용료를 챙겨왔으며, 이런 ‘이름짓기’취미가 비밀번호 구성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모와 계열사 천해지의 대표 전화번호 뒷자리도 ‘3535’다.
㈜세모 법인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는 1987년 오대양 집단변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 직후 이뤄졌다. 당시는 금융실명제 실시(1993년) 전이어서 차명계좌의 개설이 비교적 손쉬웠다. 때문에 계좌 명의자가 ㈜세모나 유씨의 관계를 부정하는 경우 세금추징이 어려웠으며, 이에 따라 비자금은 200억원 정도만 인정됐고 이에 대해서만 탈루한 세금이 추징됐다. 특별세무조사와 별도로 유 전 회장은 상습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1992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4년 확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탈세, 횡령ㆍ배임 등을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아 1,000억원대 차명 재산은 추후 유씨가 세모그룹을 재건하는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언이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검사)은 이날 유씨 측근인 송국빈(62) 다판다 대표, ㈜아해의 전직 대표 이모 씨와 현직 대표인 또 다른 이모씨 등 3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 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유씨 일가가 계열사 경영과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했는지, 경영컨설팅 명목으로 유씨에게 거액의 자금을 제공해 회사에 손실을 입혔는지 등의 혐의에 대해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해외 체류 중인 차남 혁기(42)씨와 김혜경(52) 한국제약 대표이사, 김필배(76) 전 문진미디어 대표 등에게 5월 2일까지 출석할 것을 재차 통보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 29일까지 출석하라는 검찰의 소환 통보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2차 소환 요구에 응할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불응하면 이에 상응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당초 검찰 조사를 위해 잘 출석하던 일부 참고인들이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며 “(구원파의 보복 우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화를 안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천=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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