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11시. 서울 상암동 CJ E&M센터 미디어홀에선 가수 박정현(38)의 새 노래 ‘더블 키스’의 활달한 비트가 큰 소리로 쿵쿵거리고 있었다. 영국 가수 더피가 부른 ‘머시’의 복고적 리듬을 미국 팝 그룹 B-52s 스타일로 풀어낸 댄스 록 넘버였다. 세월호 참사 소식이 있었지만 ‘전원구조’라는 속보만 믿고 인터뷰에 나선 그를 만났다. 박정현도 기자들도 400km 너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그땐 몰랐다. 전원구조가 사실인 줄만 알았다. 그로부터 2주간 그날의 인터뷰도 18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신곡도 잠시 서랍 속에 넣어둬야 했다.
노래에도 운명이 있다면 그 곡은 18일 나올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박정현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145bpm의 경쾌한 리듬은 먼 미래를 기약할 수밖에. 결국 박정현은 ‘참사에 대한 애도의 뜻’과 ‘오래 기다려준 팬들에 대한 예의’ 사이에서 고민하다 3곡이 담긴 싱글 음반 ‘싱크로퓨전’ 발매를 무기한 연기하고 단 한 곡만 공개하기로 했다.
‘더블 키스’를 대신해 운명을 대신 짊어진 ‘그 다음해’는 박정현이 작곡하고 그의 데뷔 곡 ‘나의 노래’를 작사ㆍ작곡했던 윤종신이 가사를 썼다. ‘그 다음해’에도 사랑이 이어지길 바라는 오래된 연인들에 대한 발라드다. 윤종신이 주축 멤버인 프로듀싱 그룹 ‘팀89’이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다. 박정현의 제안으로 이뤄진 협업이다.
애초에 함께 발표할 예정이었던 ‘더블 키스’와 ‘드림 스피어’ 역시 팀89와 함께 만들었다. ‘함께하고 싶은 음악가들과의 일치’(Synchronization)와 ‘장르의 퓨전’(Fusion)을 시도한 싱크로퓨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음반이다. 16일 인터뷰에서 박정현은 “그간 정규 앨범에서 인디 음악가 등과 종종 협업을 해왔는데 나와 음악 색깔이 아주 다른 음악가와 했을 때 새로운 색깔의 음악이 나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져 협업으로 싱글 시리즈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더블 키스’는 정규 8집 ‘패럴랙스’ 이후 2년 만의 신곡이다. MBC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출연과 콘서트로 2012년 한 해를 바쁘게 보낸 뒤 그는 지난해 주로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2011년 MBC 음악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이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탓이다. 그는 “그때 보여줄 건 다 보여줬기 때문에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은 앞으로 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싱크로퓨전 프로젝트는 당분간 정지 상태지만 그는 힙합 장르에 관심이 많단다. “가요 안에서 최근 가장 큰 발전을 보이는 장르가 힙합이 아닐까 싶어요. 빈지노의 앨범을 많이 들었죠. 힙합 장르는 너무 먼 장르 같아서 망설이게 돼요. 래퍼의 곡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공동 작업을 하는 건 다르잖아요. 모던 록 음악가와 함께 작업하고픈 마음도 있어요. 극과 극의 만남이 재미있으니까요.”
신곡 발표에 이어 9~11일, 16~18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대전 등을 도는 전국 투어에 돌입한다. 이전 공연과 달리 관객을 가까이서 만나는 소극장 분위기로 꾸밀 계획이다. 그는 “내가 뭘 하고 사는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만 잘 모르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며 “언젠가 미국에 있는 가족이 모두 한국에 와서 내 공연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