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무회의에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어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취임 후 네 번째인 이번 사과의 내용이 특별히 약하지는 않다. 지난해 5월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에는 “실망을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기초연금 공약 축소를 두고는 “죄송한 마음이다”, 지난 15일 국가정보원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 그런데도 이번 사과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대국민 담화나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밝힌 게 아니라 국무회의 발언 형식으로 나왔다는 게 주된 이유다. “5,000만 국민이 있는데 박 대통령의 국민은 국무위원뿐인가, 비공개 사과는 사과도 아니다”는 유가족대책위원회의 반발이 그렇고, 언론의 비판적 눈길도 거기에 집중됐다. 어차피 녹화방송으로 전달될 것이기 때문에 차이가 없다는 안이한 인식이 통할 분위기가 아니다.
▦ 그 동안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모두 나중에 국민에게 전달될 것을 상정한 간접적 형식이었다. 윤창중 사건 때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나머지는 모두 국무회의가 무대였다. 박 대통령이 특별히 국민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체질이어서는 아닌 듯하다. 세월호 참사 현장 방문 및 실종자 가족과의 대화, 규제완화 끝장토론회가 그 반증이다. 청와대가 뒤늦게 대국민 직접사과의 시기와 형식, 내용을 저울질하고 있다니, 참모들의 조언이 허술했던 셈이다.
▦ 시급한 실종자 수색 작업이 일단락된 후 특별 기자회견이나 담화를 통한 대국민 사과가 이뤄질 경우 형식 요건은 일단 충족된다.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국정 전반의 ‘안전 부실’에 대한 대통령의 ‘무한책임’ 의식을 보여주려면 애초에 그 정도는 돼야 했다. 다만 형식 요건의 충족만으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해온 국민과 유가족의 마음이 풀릴지는 의문이다. 충실한 내용과 함께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자세 없이 진정한 사과는 성립하기 어려운 게 세상이치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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