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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환경 규제 완화는 신중해야… 세월호 같은 재앙 다시 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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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환경 규제 완화는 신중해야… 세월호 같은 재앙 다시 올 수도"

입력
2014.04.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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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28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에 있는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환경 보호와 안전 사고 방지를 위한 시민운동 차원의 대책을 역설하고 있다. /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2014-04-21(한국일보)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28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에 있는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환경 보호와 안전 사고 방지를 위한 시민운동 차원의 대책을 역설하고 있다. /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2014-04-21(한국일보)

“안전과 환경 문제에서는 규제 완화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33년째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최열(65) 환경재단 대표는 세월호 침몰 참사의 한 배경으로 규제 완화를 거론했다. 최 대표는 “국가를 개조하고 사회 시스템을 전면 개혁하기 위해 정부, 국회, 각계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국가개조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년 전에 처음 만난 최 대표는 항상 낙천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2월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했을 때도 웃으면서“남부 리조트(서울 남부교도소)에서 1년 간 안식년을 잘 보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28일 만난 최 대표의 분위기는 크게 달랐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힘주어 재난 방지 대책을 얘기했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돈과 이익만 중시하다 보니 환경과 안전이 뒷전으로 밀렸다”고 진단했다. 이어 “수명을 다한 원자력발전소와 1970~80년대 집중 육성한 중화학공단의 시설이 굉장히 낡았는데, 규제까지 완화한다면 큰 재앙이 올 수 있다”고 걱정했다. 최 대표는 지난해 초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최근 출소한 뒤 환경재단 대표로 복귀했다. 지난주에는 국제 환경상인 치코멘데스상을 직접 수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을 반대해 정치적 배경으로 구속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심 청구 방침을 밝혔다. 당초 향후 환경운동 방향을 묻기 위해 인터뷰 약속을 잡았으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했다.

_본래 환경운동은 국민의 생명 및 건강 보호와 안전을 위한 활동이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 참사를 보면서 환경운동가로서 느끼는 점이 많았을 텐데.

“환경운동을 해 온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1975년 긴급조치로 구속됐을 때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장자’였다. 그 책에는 생명을 중시하면 이익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적 이익을 중시해 왔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에서는 생명이 가볍게 여겨진다. 침몰 사고는 돈 때문에 생긴 것이다.”

_돈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섰다. 노후 여객선의 수명(선령)이 본래 20년이었는데 정부는 2009년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최대 30년으로 연장했다 (원래 20년이었던 여객선 수명을 1991년 5년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가 다시 5년을 더 연장한 것이다). 일본에서 18년 동안 쓰던 세월호를 2012년에 도입한 이유는 우리는 30년까지 써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여객실을 더 늘리고 화물을 과적했다. 여객선이 물에 잠길 때에도 선장을 비롯한 선원 15명은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병원에 입원한 직후 젖은 5만원권 지폐를 말리고 있었다고 한다. 승객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선장과 선원들이 자신의 생명과 이익만 생각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_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규제는 암 덩어리”라면서 규제 완화를 역설해 왔다. 환경운동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나친 규제는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규제를 완화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ㆍ건강과 관련된 것들, 이를 테면 환경ㆍ안전ㆍ인권 분야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안보 분야에서도 필요한 규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 가령 담배는 더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_환경 분야에서 규제 완화를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70~80년 대에 집중 육성된 중화학공업 시설들이 대부분 낡은 상태다. 1984년 인도 보팔시 농약공장에서 맹독성 가스가 누출돼 2만 명이 죽거나 실명하는 등 20만 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노후 시설의 안전 대책을 강화하지 않으면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_최 대표는 원전의 위험성을 계속 제기해 왔다.

“고리 1호기 등 수명이 다한 원전이 가동되고 있는데, 노후 원전의 가동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생각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참사도 노후 원전에서 일어났다. 도쿄전력 회장이 지진이 일어났을 때 가장 안전한 지대가 원전 내부라고 말했으나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

_압축 성장의 후유증을 막기 위해 정부와 기업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최근 삼성전자에서 이산화탄소 누출 사고가 났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환경 안전을 위해 안전 전문가들을 뽑고 내부 투자도 많이 하고 있다. 휴대폰의 품질은 세계 최고이지만 사고가 나면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들도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자력으로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술 지도를 하고 적극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_재난과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해 시민사회도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행기와 달리 배에 탈 때는 안전교육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민들은 배를 탈 때 구명조끼, 구명보트 사용법 등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돼 왔지만 안전교육 전문기관을 만드는 등의 대책 마련은 없었다. 또 공직사회의 순환보직으로 공무원의 전문성이 많이 떨어졌다. 이번에 무기력한 공무원들의 행태를 보면서 관료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실감했다. 그래서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같이 노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 각계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안전교육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매뉴얼을 만드는 등 국가와 사회 시스템 전면 개혁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환경재단 등 시민사회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_국가와 사회의 전면 개혁이란 말은 너무 막연하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하는 거버넌스 체제를 만들어 거기에 권한과 예산을 줘야 한다. 관료들끼리만 모여서 논의하면 폐쇄회로에 갇히게 된다. 미국의 경우 공무원이 태만하면 바로 계약이 해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공무원이 그만둔 뒤에도 유관 기관의 책임자로 일하기도 한다. 정부 조직과 예산도 시대 변화에 맞춰 바꿔야 한다. 농업 관련 공무원은 줄지 않고 있고, 안전 관련 부서는 확충되지 않고 있다. 시민 안전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위해 각계 전문가와 시민사회, 관료들이 같이 협력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_지난해 9월 수감 중 치코멘데스상 수상자로 결정돼 지난 23일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는데.

“미국의 환경운동단체인 시에라 클럽이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를 위해 활동하다가 암살 당한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치코멘데스를 기리고자 제정한 상이다. 30여 년 간의 환경보호 헌신과 4대강 사업 저지 활동 탄압에 따른 고통을 인정 받아 상을 받게 됐다고 생각한다.”

_최 대표는 우리나라 1세대 환경운동가인데, 언제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했는가.

“1981년 환경 보호 운동을 시작했고, 82년에 공해문제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했다.”

_33년 동안 환경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공해라도 배불리 먹고 싶다’는 심정으로 환경운동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대다수 국민들이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단지 실천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환경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이 고무적이다.”

_앞으로 환경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우리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린다. 많은 어린이들은 아토피와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 환경과 관련된 질병들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식품을 먹고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경운동은 이런 점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에너지 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가질 생각이다. 에너지 공급은 독일처럼 지역 분산형으로 가야 한다. 의식주 속에서 추진하는 생활환경운동도 적극 펼칠 생각이다. 가령 옷 하나 만드는 데 수많은 자원이 들어가므로 좋은 옷 오래 입는 운동으로 가야 한다.”

_ 환경재단이 추진하는 ‘그린 아시아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고도 성장으로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아시아가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야 지구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환경보호를 위한 시민단체(NGO)가 중국에는 아예 없고, 일본에는 숫자가 적다. 한국이 아시아 지역 환경단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1982년 내가 만든 공해문제연구소는 독일 단체로부터 매년 2만 달러씩 5년 동안 지원 받아 대표적 환경 단체로 성장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환경재단은 아시아 지역의 환경운동가와 단체를 지원할 생각이다. 현재 환경재단은 아시아의 14개국 37개 단체를 돕고 있다.”

_최근 ‘북한 나무 심기 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데.

“남쪽은 1960년대부터 조림 사업을 해서 숲을 조성했다. 하지만 북쪽은 연료 부족 등으로 민둥산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산림기관과 비정부기구는 북한 나무 심기 운동을 시작했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 이후 협력 사업을 중단 시키는 바람에 그 운동도 불가능해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인 고건 전 총리가 과거 새마을담당관으로 나무 심기를 주도한 경험을 살려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해 나서겠다면서 지난 3월 환경단체들과 함께 ‘아시아녹화기구’를 창립했다. 남북의 산림 보호는 통일이 되더라도 좋은 것이므로 박근혜 정부가 풀어줬으면 좋겠다.”

_지난 1년 옥중에서 노트 10권 분량의 메모를 했다고 들었다.

“1975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을 때 있었던 서울구치소의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녀온 서울 남부교도소 독방은 0.8평 온돌방에 양변기와 세면기가 있고 벽에는 23인치 LCD TV, 선풍기까지 달려 있었다. 거기서 책과 신문, 잡지 등을 많이 보면서 생각한 것을 메모했다. 내가 나가서 꼭 만나고 싶은 국내외 인사 200명 명단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도 정리해봤다. 나는 앞으로 ‘명사’(名詞) 아니라 ‘동사’(動詞)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끊임 없이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겠다.”

인터뷰=김광덕 선임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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